[경상시론]말의 정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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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말의 정신세계
  • 경상일보
  • 승인 2021.05.2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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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황 울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

우리는 우리가 가진 말과 글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지낸다.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글자로 평가 받는 우리글 ‘한글’ 덕분에 오늘날 누구나 쉽게 글을 배우고 읽고 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글이라는 최고의 글자를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말 속에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녹아든 외래어뿐만 아니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외국어까지, 즉 말의 잡초가 지나칠 정도로 무성하게 자리 잡고 있다. 언어가 가지는 사회성, 역사성, 창조성 등의 특징과 함께 세계 간의 거리가 가까워진 오늘날, 외래어와 외국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말과 글로 나타낼 수 있는 것까지 어려운 한자말, 일본말 그리고 서양의 외국말까지 섞어 쓸 필요가 있을까. 지금의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진정 한국 사람을 위한 우리말이 맞는지 한 번쯤은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외래어는 외국어와 달리 우리 언어체계에서의 사회적 허용에 따라 동화되어 우리말처럼 사용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외래어와 외국어는 어느 나라 말에나 있으며, 특히나 세계화 시대에 있는 오늘날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말에는 한자어, 일본어, 그리고 최근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시작된 서양어(특히 영어)까지 많은 언어들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면서 우리말로 나타내기 어려운 말은 다른 언어의 말을 빌려다가 사용하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쓰는 ‘버스’ ‘택시’ ‘티브이’ 등 숱한 낱말들이 우리 언어생활에서 쓰이는 대표적인 외래어라 하겠다.) 이렇듯 우리글에 녹아든 외래어와 외국어는 누구나 그 뜻을 알 수 있어야 하지만 어휘를 빌려 쓰는 과정에서 그 의미나 용도가 달라지거나 문화적 환경의 영향으로 그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가 많다.

또한 우리말로 나타낼 수 있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 특히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대화를 들여다보면,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 사용이 매우 잦다. 그들의 지식을 나타내기 위한 방법이라고 보기에도 과한 사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모양새는 오래 전부터 있어 온 것으로 한자어가 넘쳐나는 것도 과거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확히 뜻도 알 수 없는 한자어와 웬만큼 공부한 사람도 알아듣기 힘든 외국어를 일상 언어생활에서 쓸 필요가 있는지 묻고 싶다.

말은 민족정신의 창조적 활동의 하나이다. 또한 그 민족의 정신이 깃든 ‘둥우리’라 한다. 여기, 한글학자이자 언어학자인 눈뫼 허웅 선생의 1976년 <새바람>에 실린 글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말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나타내는 데 봉사하는 도구이다. 그러나 말은 단순히 도구로서의 구실만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정신을 형성해 나가는데 다른 어떠한 요인보다 더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중략-

우리는 언어능력을 부려서 언어행위를 하게 되는데, 언어행위를 함에 있어서, 그 언어능력이 이를 충분히 뒷받침해 주지 못할 때는 어떠한 방법으로든 그 욕구를 충족시켜줄만 한 표현을 찾아내는 것이다. 언어능력을 언어행위로 부려 쓰는 정신활동이나, 경우에 따라서 필요한 표현을 발견하는 행위는 모두 인간의 창조적인 활동이다.

우리가 외래적인 말을 빌어 쓰는 데로만 쏠린다면 우리민족의 정신활동은 마비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나아가서 우리민족의 다른 모든 부분에 있어서의 창조적 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민족의 앞날을 위해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이러한 사태를 직시하고서, 우리 모두 다투어 이 민족적 과업에 앞장서야 되겠다.

허황 울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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