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석유제품운반선 화재폭발 사고, “굉음·불기둥에 아수라장…멀리서도 열기에 다리털 그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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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석유제품운반선 화재폭발 사고, “굉음·불기둥에 아수라장…멀리서도 열기에 다리털 그을려”
  • 김현주
  • 승인 2019.09.29 2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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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 오간 전쟁과도 같았던 순간들
▲ 지난 28일 울산시 동구 염포부두에서 발생한 선박 폭발사고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고 있다. 독자 제공

BBS코리아 손성봉 대표 제공 블랙박스에 당시 상황 생생
필리핀 선원 바다에 ‘풍덩’…울산대교 달리던 차량 ‘후진’
해경, 추가 폭발 막으려 목숨 걸고 홋줄 절단·24시간 진화


“살기 위해 있는 힘껏 불기둥 반대편으로 뛰었는데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더라구요. 갈 곳이 없었어요. 이제 죽었구나 했습니다.”

선박 식자재를 공급하는 BBS코리아의 손성봉 대표는 지옥이 눈앞에 펼쳐졌다고 했다. 직원들과 함께 선박에 식자재를 옮기기 위해 손 대표가 염포부두에 도착한 건 지난 28일 오전 10시. 실어온 식자재를 배로 보내기 위해 중간 운송선에 한참 실던 오전 10시50분께 손 대표와 직원들은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울산대교 주탑까지 솟아오르는 엄청난 불기둥을 마주했다.

손 대표는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 전부 아연실색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었다. 나 역시 무조건 반대편으로 가야 된다는 생각에 뛰다가 넘어졌는데 체면이고 뭐고 정신없이 차 밑으로 기어들어갔다”고 전했다.

손 대표의 모습은 그가 본지에 제공한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도 선명하게 담겨있다. 차 밑으로 기어들어가 있던 손 대표는 도망가야 된다며 잡아끄는 직원의 손길을 따라 다시 일어나 반대편으로 달렸다. 하지만 부두 끝에는 철조망이 있어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손 대표와 직원들이 철조망 너머에 있는 사람들에게 철조망을 잘라달라고 소리를 질렀으나 철조망 너머에 있던 사람들도 폭발에 놀라 도망치느라 정신없었다. ‘꼼짝없이 죽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손 대표가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철조망에 바짝 붙어 직원들하고 같이 벌벌 떨었다. 추가 폭발이 있었다면 분명 죽었을 거다. 불길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배하고 가장 먼쪽으로 둘러서 겨우 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폭발과 함께 미치던 그 열기는 엄청났다. 같이 빠져나온 한 직원은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리털이 그을렸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바우달리안 호에 타고 있던 필리핀인 선원 역시 폭발 직후에 엄청난 열기를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폭발에 몸이 휘청거려 넘어졌다. 그냥 뛰었다. 다른 직원들 전부 도망쳤고 어느 배 소속인진 모르겠지만 바다로 뛰어내린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 지난 28일 울산 동구 염포부두에 세워져 있던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스톨트 그로이란드 호 폭발 장면. 부두에 있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해 도망가고 있다. BBS코리아 손성봉 대표 제공

사고 당일 한 SNS에 공개된 울산대교에서 찍힌 영상 역시 충격적인 모습 담고 있다. 울산대교 동구에서 남구 쪽으로 진행하던 차량의 블랙박스에는 폭발 소리와 함께 불기둥이 울산대교 주탑보다 높이 솟아오르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급하게 “차 빼, 빽해, 빽!”하고 외치는 목소리도 함께 담겨있다.

신고 접수 직후 현장에 도착한 해양경찰서 경찰들과 동부소방서 소방대원들은 최일선에서 엄청난 화마와 맞서야 했다.

신고를 접수받고 현장에 도착해 진화작업을 벌인 소방과 해경은 이날 3차 폭발 직후인 오후 4시30분께 해경구조대원들이 직접 바우달리안 호를 통해 스톨트 그로이란드 호로 진입하는 작전을 벌였다. 불길이 번져 다른 탱크에 닿거나 바우달리안 호로 퍼질 경우 더 큰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단 판단에서였다.

3차 폭발 때 엄청난 불길이 치솟았던 배에 오른 해경 요원 6명이 두 선박을 고정하고 있는 홋줄을 절단했다. 1차 초진이 이뤄지긴 했으나 과열로 탱크상판이 상당히 변형돼 있던 터라 자칫 추가 탱크 폭발이 일어났다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화재 진화작업은 밤새도록 계속됐다.

29일 오후 1시 동부소방서로 귀환한 소방대원들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24시간동안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진화 작업을 벌였다. 지금 보고서 작성할 기운은 커녕 말 할 기운도 없다. 그 정도로 힘든 진화 작업이었고 대원들 전부 너무 힘들고 너무 지쳤다”고 전했다. 김현주기자 khj1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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