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걱정 말아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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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걱정 말아요, 그대
  • 경상일보
  • 승인 2019.12.10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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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식 삼일여고 교사

매해 이맘때쯤이 되면 정신없이 하루하루 살던 나의 생활,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 혹은 꼭 기억해야 할 일, 때로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곱게 채색되어 있는 기억도 있고, 때로는 망각이라는 편한 장치로 떠나 보낸 나의 역사도 그 안에는 있을 것이다.

며칠 전, 학창시절 친구가 단톡방에 올린 그 시절 우리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사진을 보면서 아련하기도 하고 어쩐지 슬프기도 했다. 사진 속에 나는 환하게 웃고 있어서…이때의 나는 행복했구나 착각하게 된다. 일정한 슬픔 없이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을까? 지금은 잃어버린 꿈. 언제부터 장래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게 된 걸까. 일 년 뒤가 지금과 다르리라는 기대가 없을 때, 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를 견뎌낸다는 느낌이 자꾸 들곤 한다. 아직 내가 한참이나 돌봐주고 건사해야 할 해맑은 모습의 자식들을 보고 있자면, 해가 갈수록 자꾸만 작아지고 있는 (푹 꺼진 깊고 깊은 두 눈에 슬픔이 그렁그렁 고여 있는 것만 같은)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돌아 올 때면, 격년마다 돌아오는 건강검진을 앞둔 12월이 되면,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차곡차곡 걱정거리가 자꾸 쌓여 가는 것만 같다.

최근에 본 가장 따뜻하고 위로가 되었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작가는 드라마가 종영된 후 “내 주변에 완벽한 지지자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 겉과 속이 같고 행간을 살피지 않아도 되는 사람, 치이고 들어와도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마음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보는 내내 주인공 ‘동백’의 눈물을 닦아 줄, 괜찮다, 괜찮다고 말해 줄 그런 사람들이 그녀의 주변에 있다는 것이 따뜻하고 눈물겨웠다. 금방 막 아궁이에서 건져낸 군고구마처럼 따뜻하고, 그 옛날 보온 도시락에 담긴 어머니가 싸 준 점심밥처럼 그 따스함이 묵중하게 오래 오래 지속되는 듯한 느낌의 따듯함, 그리고 따뜻하고 애틋한 감정이 공존해 있는 듯한 느낌의 ‘따틋함’이 드라마 속 곳곳에 잔잔히 녹아 있었다. (나는 우리말만이 지닌 예사소리, 된소리, 거센 소리가 지닌 각각의 느낌이 참 좋다. ‘따뜻하다, 따듯하다, 따틋하다’ 이들 소리가 지닌 각각의 울림이 정겹다.)

지난 주말, 거실 한켠에 조그마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놓았다. 조그만 전구에서 빛을 발하는 불빛들을 바라다보고 있으면 어쩐지 연말이 쓸쓸하지 않을 것 같다. 휑하지 않고 따뜻할 것만 같았다. 살다보면 전구의 빛은 종종 들어왔다 사라지곤 하는데, 스위치를 켜준 모든 손길에 축복이 함께하길, 또 서로에게 그런 손길들이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손을 꼭 잡은 듯한, 따뜻하고, 따듯한, 따틋한 12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L선생님은 연말이 되면 이 노래가 생각난다고 했다. 이 노래를 들으면 연말 기분이 난다고 했다.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로 시작해서,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로 끝나는 노래. 겨울 밤, 뺨을 스치는 찬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어둠 속의 길을 걸으며 나는 이 노래를 들었다. 그대, 걱정 말아요. 김경식 삼일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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