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이번 결정이 개별 기업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임금피크제에 대한 첫 판단인데다 임금피크제를 통해 인건비를 절감해 온 기업들은 향후 유사한 소송이 줄을 이을 가능성이 커 비상이 걸렸다.
임금피크제는 근로자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는 시점부터 임금을 점차 깎는 대신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다. 임금피크제가 도입되기 전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고령 근로자에게 명예퇴직, 권고사직 등을 할 수 있었다. 이는 근로자의 생활을 불안정하게 하고 노인 빈곤 등을 야기할 수 있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한 일부 사업장에만 적용되던 임금피크제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것은 2013년 고령자고용법 개정(2016년 시행)으로 노동자의 정년이 60세 이상으로 늘면서다.
박근혜 정부는 ‘60세 정년’ 의무화를 앞두고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임금피크제 확대에 힘을 쏟았고 2015년 말에는 공공기관 전부에 도입이 완료되는 등 성과를 냈다. 또 300인 이상 기업체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곳이 2015년 27.2%에서 2016년 46.8%로 늘어나는 등 민간 분야에서도 빠르게 확산했다.
다만 고령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면서 신규 인력 채용을 확대한다는 원래 목표가 제대로 달성되지 않았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특히 연령을 이유로 노동자를 임금 등 분야에서 차별하지 못하게 한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판결은 이런 임금피크제와 고령자고용법의 충돌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한 대법원의 첫 판단이다.
대법원은 “고령자고용법의 규정 내용과 고용의 영역에서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해 헌법상 평등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려는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연령 차별 금지) 조항은 강행 규정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아무리 노사가 합의했더라도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정당성과 필요성 △실질적 임금 삭감의 폭이나 기간 △임금 삭감에 준하는 업무량·강도의 저감이 있었는지 △감액 재원이 도입목적에 사용되었는지 등 조치의 적정성 등을 따져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런 ‘합리적 이유’ 없이 단순히 연령을 기준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의미다.
한편 노동계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대법원의 판단을 환영했다.
한국노총은 대법원 판례가 나온 이후 논평에서 “지금 같은 방식의 임금피크제는 지속돼서는 안 된다”며 “대법원 판결은 당연한 결과로, 적극적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입장문에서 “임금피크제의 본질과 법의 취지 및 산업계에 미칠 영향 등을 도외시한 판결”이라면서 “향후 고령자의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청년 구직자의 일자리 기회 감소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차형석기자 stevecha@ksilbo.co.kr
저작권자 © 울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