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운의 울산현대史]외솔 최현배의 뜻 받들어 서예로 한글의 우수성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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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운의 울산현대史]외솔 최현배의 뜻 받들어 서예로 한글의 우수성 전파
  • 전상헌 기자
  • 승인 2022.10.0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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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운 지역사 전문가·울주문화원 이사

외솔 최현배 선생은 1894년 울산 병영에서 태어나 한글 사랑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외솔은 일제강점기에는 우리글을 지키려다 옥고를 치렀고 이후에도 우리의 민족혼이 한글에 있다고 보고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마련하는 데 앞장섰다.

울산은 이런 외솔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2010년 그의 생가터에 외솔 기념관을 건립하고 매년 한글날이 되면 학술대회 등 그를 선양하는 사업을 벌인다. 그런데 매년 한글날 외솔 기념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글 사랑에 대한 이런 행사를 볼 때마다 회한에 젖는 울산 사람이 있는데 그가 신정동에서 가슬 서실을 운영하고 있는 한기선 서예인이다.

가슬이 회한에 젖는 것은 지난 2020년 한글의 우수성과 평생 한글을 사랑했던 외솔 선생의 업적을 전국에 알릴 아까운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가슬에게 한글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은 2020년 4월 부산에서 신년다례연이 열렸을 때였다.

신년다례연은 부산 남구 대연동 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최되었다. 매년 차인들이 중심이 되어 여는 이 행사는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신년다례연은 노래와 춤, 민속 음악 연주 그리고 서화를 통해 우리 차의 우수성과 또 한글의 아름다움을 전국에 알려왔다.

2020년 행사는 울산에서 가까운 부산에서 열리다 보니 울산의 많은 차인과 서예인이 참석했는데 가슬은 이때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대에서 다산 정약용이 지은 시의 한 구절인 ‘붉은 꽃잎’을 한글로 썼다.

▲ 한 때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한글 퍼포먼스를 계획했던 가슬 한경선 서예인이 울산 남구 신정동 서실에서 울산 사람들의 한글 사랑을 나타내는 뜻이 담긴 ‘울산사람 외솔사랑’의 글씨를 쓰고 있다.
▲ 한 때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한글 퍼포먼스를 계획했던 가슬 한경선 서예인이 울산 남구 신정동 서실에서 울산 사람들의 한글 사랑을 나타내는 뜻이 담긴 ‘울산사람 외솔사랑’의 글씨를 쓰고 있다.

그런데 가슬의 글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던 부산의 중진 방송인 이모씨가 가슬의 글을 본 후 글체를 칭찬하면서 이런 퍼포먼스를 부산에서만 할 것이 아니고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더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가슬이 원한다면 서울 본사와 협의해 이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 서예 공부를 하면서 한글의 우수성을 깊이 깨닫고 이를 알리고 싶었던 가슬로서는 이보다 반가운 일이 없었다. 이후 가슬은 울산으로 돌아와 서실에서 회원들과 함께 퍼포먼스 준비를 했다.

당시 그가 서울 퍼포먼스에 선보일 글제는 ‘한국사람 한글사랑’으로 글의 크기가 가로 2m, 세로 3m나 되었다. 가슬은 이 글을 쓰기 위해 특별히 김종훈 울산무형문화재가 제작한 붓을 구입했다. 말꼬리로 만든 이 붓은 총장 55㎝ 그리고 털 길이가 15㎝나 되는 대형 붓이었다.

가슬 서실 회원도 한글 사랑을 보여주는 각종 글제를 준비했다. 그리고 부산의 이모 방송인도 자신이 가슬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본사를 오르내리면서 행사가 차질 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썼다. 그리고 이모 방송인으로부터 본사가 서울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연락도 받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계획은 한글날을 앞두고 코로나가 갑자기 창궐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이러다 보니 당시 그가 준비했던 글은 광화문 대신 지금도 그의 서실에 걸려 있다.

가슬이 한글을 좋아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부터다. 어린 시절 장생포에서 태어나 장생포 초등학교를 다녔던 가슬은 국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고 특히 글쓰기를 잘해 담임선생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가슬은 선생의 칭찬이 좋아 글쓰기 공부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한글 쓰기와 공부는 초등학교 졸업 후에도 이어져 중고등학교에 가서도 다른 학생들이 영어 공부를 할 때 그는 국어 공부에 매달렸다. 어른이 된 후에는 서예 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을 오르내리면서 지송 이정옥 선생으로부터 서예를 배웠다. 지송은 ‘갈물 한글 서회’ 20대 회장을 지내는 등 서울의 명망 있는 서예인이다.

글쓰기에 몰두하는 동안 가슬은 ‘한글문화의 도시’ 울산에 아직 한글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신라 충신 박제상 일가의 행적이 알려지면서 울산은 그동안 ‘충효의 도시’임을 자랑해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외솔의 한글 사랑이 대외적으로 알려지면서 그가 태어났던 울산이 ‘한글문화의 도시’라는 아름다운 별칭을 갖게 되었다.

가슬이 한글의 우수성을 가르치기 위해 서실을 낸 것은 20여 년 전이다. 2000년대 초 지금의 울산 남구 옥동에 자그마한 서실을 마련했던 가슬은 회원들이 늘어나면서 2010년 중반에는 서실을 신정동으로 옮겨 이곳에서 요즘도 회원들과 함께 글을 쓰면서 한글 서예를 가르치고 있다.

그동안 그는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현대 서예 문인화 대전 부이사장, 울산미술 대전 운영 심사위원을 거쳐 지금은 한국 전통 사경연구회와 갈물한글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예 공부를 하는 동안 그는 한글이 서예인 사이에서도 홀대받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울산 서예인 중에는 아직도 한글을 언문으로 생각하고 한문이 한글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직 많은 서예인이 서예를 공부하면서 한글보다는 한문을 써야 더 품위가 있다고 생각하고 한문 공부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한문을 가르치는 서예인은 정성들여 한문 공부를 하지만 한글은 가르치는 서예인은 따로 한글 공부를 하지 않고 한글을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 서예인들도 많았다.

가슬은 한글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한문에 못잖은 공부와 준비를 해 한글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서체를 보더라도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확실히 구분되어 이를 잘 조화시켜 글을 쓰면 한문에 못잖은 아름다운 글체가 된다고 가슬은 강조한다.

실제로 울산은 서도회가 창립될 때부터 한문 서체에 능숙한 서예인이 글을 가르치는 바람에 한글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울산에 서도회가 창립된 때가 1970년대 초다. 이때 청남 오제봉 선생이 당시 울산초등학교 앞에서 대동병원을 운영하고 있던 김재호 박사와 친해 울산을 방문해 울산 서예인을 상대로 서예를 가르쳤다.

청남은 당시 영남을 대표하는 서예인으로 울산 서예인에게 글씨를 통한 예술방향을 제시하고 서예의 참될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다.

이후 1980년대가 되면 울산의 많은 서예인이 소봉 모성수 선생으로부터 글을 배우게 되는데 소봉이 중국인이다 보니 한글 공부를 따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그동안 울산에서도 한글로된 자신의 서체를 개발할 정도로 뛰어난 한글 서예인이 나왔다. 그러나 한글 서예인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한글을 사랑하는 서예인과 모임이 더 많이 울산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 가슬의 지론이다.

서울에는 한글을 사랑하는 여성 서예인이 ‘갈물한글 서예’라는 서예 단체를 만들고 오래전부터 한글 전시회를 열고 책자를 발간하면서 한글의 우수성을 대외적으로 알려오고 있다.

1958년 창립되었던 이 단체는 이후 매년 ‘갈물한글 서회전’을 개최해 한글의 우수성을 전국에 알리고 있는데 지난해 제60회 전시회를 열고 당시 전시된 작품을 중심으로 도록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에 비하면 외솔 기념회는 2010년 창립되었지만 창립 그해 서예대전을 가진 후 이 행사가 지속해서 이루어지지 않아 아쉬움을 주고 있다.

가슬이 기대했던 서울 퍼포먼스는 최근 이모 방송인이 정년퇴임을 하면서 방송국을 떠나는 바람에 다시 열리기가 힘들 것 같다.

‘한글문화의 도시’ 울산에서는 최근에도 한문과 한글 사용을 놓고 논쟁이 있었다.

지난해 울산 남구 달동에는 울산항일독립운동 기념탑이 세워졌다. 이 기념탑을 세울 때 건립추진 위원들 사이에는 탑에 새겨질 외솔 선생의 이름을 놓고 논쟁이 일어났다. 위원들 대부분은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한문으로 새기자는데 동의했다. 그런데 당시 심의 위원 한 명이 외솔 선생의 한글 사랑을 얘기하면서 외솔 선생 이름은 한문이 아닌 한글로 새겨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달동 기념탑에는 외솔 선생의 이름이 한문으로 새겨져 있다.

얼마 전에도 이런 논쟁이 언론을 통해 나타났다. 경상일보의 임규동 기자는 외솔 기념관의 이름을 말하면서 다른 건물은 몰라도 외솔 기념관은 한문 식인 ‘기념관’ 대신 ‘외솔을 기린다’는 우리 뜻이 담긴 ‘기림집’으로 고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내어놓았다.

다른 지역이 한문으로 이름을 새기는데 울산에서는 한글로 새긴다고 부끄러울 것은 없다. 그리고 기념관도 아직 귀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순수 우리말인 ‘기림집’으로 하는 것이 목숨을 걸면서 까지 한글을 사랑한 외솔의 뜻을 받들고 ‘한글문화의 도시’ 울산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 될 것 같다.

이번 한글날에는 울산시민 모두가 ‘한글문화의 도시’ 시민으로 한글 사랑의 참뜻을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 장성운 지역사 전문가·울주문화원 이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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