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교사의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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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교사의 2월
  • 경상일보
  • 승인 2020.02.11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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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미옥 다운고등학교 교사

방학 지낸 교정이 궁금하여 걸었다. 뒤뜰에 흰매화가 두세점 피었다. 홍매도 오동통 어여쁘다. 양지바른 곳 명자나무 꽃봉오리 한두 개 볼그레하다. 생명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솜털이 화사한 목련나무 겨울눈을 보니, 옮겨가는 학교에서 만날 아이들이 궁금하다. 이곳의 아이들과 얼마나 다르고 같을까, 어떤 수업이 좋을까, 온갖 생각들로 몸이 긴장으로 차오른다. 제법 오래 살았으나, 그곳에서 만날 아이들은 내 생애 또 처음인지라 습관으로 굳었던 몸이 묘한 두려움으로 어색해진다. 이런 반응은 그 아이들에게 좀 괜찮은 교사, 제법 좋은 어른이면 좋겠다는 욕심으로 생긴 것이겠다.

요즘 ‘라틴어 수업(한동일)’을 읽고 있다. 천천히 읽으며 교사로서 나를 살핀다.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한 것 가운데 어떤 것을 살리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 시작하는 마음으로 돌아본다. 글쓴이는 중세교육에서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이, ‘교육이 나와 나의 목표와 나의 과정이 일치하도록 하는 훈련이었다는 점, 젊은 세대가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해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도록 하고 그 과정에서 각자 자기 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이라고 했다. 학교는 청년들이 스스로에 대해 들여다보고 나아가 진리를 탐구하며, 자기 삶을 사랑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어야 하며, 학생은 교육과정 속에서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세심하게 관찰하고, 내 안의 논리와 만나기 위해 시간을 들여 성찰해야 하며 그것을 바른 방향으로 정립시켜나가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나이가 많든 적든 각자 살아온 삶이 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문제를 정립하고 해결해 왔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틀이 논리이고 그것이 우리 안에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라고 했다. 자기 안의 논리를 깨닫고, 자신의 논리로 세상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 교육이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내 수업을 통해 갖기를 바라는 것이, ‘당당한 자신의 목소리를 갖게 하는 것’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교육을 통해 가고자 애썼던 방향이 전혀 엉뚱한 쪽은 아니었구나 하는 안심이 든다.

누구나 자신이 걷는 길에 확신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 더한 열정을 쏟을 수 있고, 뒷날 후회나 아쉬움이 적으며, 걸어온 길이 보람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걷는 나날의 삶은 의심의 연속이다. 그것은 어제의 아이들로 오늘의 아이들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내기 시절의 설렘이 퇴직할 날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교사에게도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새내기 시절 제대로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얼마 남겨 두지 않은 교사에게도 날 선 채로 여전하기 때문이다. 날마다 아이들은 새로운 얼굴로 우리를 낯설게 하고 지난 경험은 때론 무용지물이 된다. 좀 더 나은 교사로서의 공부는 늘 현재진행형이다. 삶에 정답이 없듯, 가르침에도 ‘이것이다’라는 모범답안이 없으며, 오늘 이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것을 나름 찾을 수밖에 없다. 교사에게 ‘세상의 모든 것들을 공부거리로 인식하는’ 남다른 직업병이 있다.

새해, 어제의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만나게 될 오늘의 아이들을 위한 준비로 알뜰한 2월이다. 치열하게 바쁘다. 교사에게 2월은 그런 달이다. 신미옥 다운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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