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사랑은 심심하지만
알고 보면 깊은 농염이다
내 사랑에 온갖 맛이 들어 있다는 건
깊이 다가와 본 사람은 다 안다
춘궁(春窮)이거나
춘궁 같은 허기거나
허기보다 더 아득한 마음일 땐
심심하고 둥근
둥글고 부드러운 내 몸에
당신의 이빨자국을 찍어 보라
당신이 가진 온갖 맛
떫거나 시거나 쓰거나 짠맛, 맛들을
순하고 착하게 껴안아주리
내 살 깊이 품었다가
온전한 농염으로
다시 당신께 돌려보내리
삶의 온갖 맛을 순하게 위로해주는 ‘감자’

하지 여름이니 감자가 제 철이다. 어린 시절 감자를 캐는 일은 늘 신이 났다. 감자는 땅속에 숨어있기 때문에 호미가 흙을 뒤집을 때 어떤 감자가 얼마큼 나올지 궁금하고 설렜다. 이제, 시의 맛을 제대로 알기 위해 하지감자를 가득 삶아 양푼에 담아 놓고 먹는 중이다. 감자는 둥글고 어질게 생겼다. 그 맛은 부드럽고 구수하고 담담하다. ‘심심’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시인은 감자를 ‘내 사랑’이라고 표현하며 거기에서 ‘농염’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농염은 무르익은 관능적 아름다움 아닌가. 이 소박하고 서민적인 감자가 농염하다 한 것은 감자가 떫고, 시고, 쓰고, 짠, 삶의 ‘온갖 맛’을 ‘순하고 착하게 껴안아’ 주기 때문이다. 춘궁기의 대표적인 구황작물이니 마음의 ‘허기’까지 위로하고 달래줄 것 같다. 로트렉이 그린 애환이 넘치는 뒷골목의 풍정 같이.
여담이지만 감자가 처음 들어왔을 때 악마의 작물이라 불렸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감자의 색깔이 관능적이어서라고 한다. 하긴 빨갛거나 자주색 감자도 있긴 하다. 그래도 삶의 갖가지 맛이 밴, 따뜻하고 하얀 감자의 관능만은 못하리. 삶은, 감자.
송은숙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