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318)]결초보은(結草報恩) 수크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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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318)]결초보은(結草報恩) 수크령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3.09.19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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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춘추시대 진(晉)나라 군주 위무자에게 애첩이 있었다. 어느 날 병석에 눕게 된 위무자는 아들 위과를 불러 자신이 죽으면 애첩을 재가시키라고 했다. 그러나 위독해진 위무자는 “자신이 죽으면 애첩도 함께 묻으라”는 정반대의 유언을 남겼다. 고민하던 위과는 “난 아버지께서 맑은 정신에 남기신 말씀을 따르겠다”라며 애첩을 순장(殉葬)하는 대신 다른 곳으로 시집보냈다. 세월이 흐른 후 진(秦)나라가 진(晉)나라를 침략했다. 위과가 전쟁터에서 위험에 처하자 친정아버지 혼령이 나타나 적군 앞의 풀을 묶어 올가미를 만들었다. 적군이 탄 말은 여기에 걸려 넘어졌고, 그 사이에 위과는 도망칠 수 있었다.

결초보은(結草報恩)은 ‘풀을 엮어 은혜를 갚는다’라는 뜻인데, 여기서 사용된 풀이 바로 수크령(사진)이다. 억세고 질기며 키가 커 올가미를 만드는데는 제격이다. 필자도 어렸을 적에 풀로 덫을 만들어 친구를 넘어뜨리는 장난을 친 기억이 있다.

가을 초입에 가장 눈에 띄는 것들 중의 하나가 수크령이다. 중국에서는 낭미초(狼尾草, 늑대 꼬리 풀), 우리나라에서는 구미근초(狗尾根草, 개꼬리뿌리풀)로 불린다. 그 모양이 강아지풀을 닮았지만 그 크기는 훨씬 크다. 요즘 국가정원 일대에는 수크령이 지천이다. 한낱 잡초였던 이 풀이 국가정원에서 아름다운 가을의 전령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음악은 풀에서 시작된다/ 바람 끝이 닿을 때/ 맺혔던 이슬이 떨어질 때/ 풀잎은 비올라의 현이 된다// 귀를 열고 청력의 볼륨을 높이면/ 저 신의 음률을 들을 수 있다// 신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무관심한 저 풀잎에 있다/ 거기서 노래를 만들고 있다 ‘수크령’ 전문(문효치)

수크령은 이름이 특이하지만 길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풀이다. 수크령이란 이름은 다시 말하면 ‘남자 그령’이란 뜻이다. 그령이라고 부르는 벼과 식물과 비교해서 훨씬 강하고 억세다고 해서 ‘남성그령’ 또는 ‘숫놈그령’이라는 뜻으로 수크령이 됐다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길가에 난 힘세고 질긴 풀이라고 해서 ‘길갱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영어로는 Fountain grass(분수초)라고 부른다. 억세고 긴 줄기 끝에 꽃이 개꼬리털 처럼 사방팔방으로 튀어올라 그 모양이 마치 분수같아서이다.

수크령은 주로 사람 옷에 붙어 이동하는데 꽃말은 ‘가을의 향연’이다. 사람이 수크령을 데려오고, 수크령이 가을을 데려오니 비로소 가을의 향연이 시작됐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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