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을 모르던 노인이 일흔이 넘어 글을 배우고 책까지 펴냈다. 주인공은 울산푸른학교 중등과정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순연씨. 78세의 이씨는 5~6년 전부터 문해학교를 다니며 배운 한글로 자신의 일상을 글과 시로 엮어 최근 <비 온후해 뜬 날의 기록들>을 펴냈다.
‘요즘은 학교에 가도 마음은 항상 허전하고 쓸쓸하다. 졸업 때문이다. 나는 아직 글자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데 졸업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하다. 그런데 오늘 선생님 말씀을 듣고 한편은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선생님, 저도 그 위대한 중학교에 갈 수 있을까요.’
‘졸업’ 전문.
70년 넘게 깜깜한 세상을 살았던 이씨의 속내가 고스란히 보이는 한편의 ‘시’다. 불안하면서도 상급반으로 진학을 기대되는 마음을 잘 표현했다. ‘일흔 넘어 한글을 배우고 책을 낸, 이순연 인생스토리’라는 부제라 달린 이 책에는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이유가 나온다. 산촌에서 태어난 이씨는 6·25전쟁으로 아버지와 남동생을 잃고 여덟 살까지 엄마, 오빠와 갖은 고생을 했다. 고아원 생활과 남의집살이 등로 학교는커녕 한글조차 깨칠 수 없었다. 외국에 근로자로 가게 된 남편과 연락 수단인 편지를 읽지도 쓸 줄도 몰라 세상과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다. 세월은 흘러 세 남매를 훌륭히 키우고, 찾아간 한글학교에서도 용기가 나지 않아 무수히 발길을 돌렸다.
일흔을 넘겨 마지막으로 큰 용기를 내고 찾아간 울산푸른학교에서 한글을 익혀 세상을 떠난 그리운 남편 장상길씨에게도 사랑을 듬뿍 담은 편지도 책에 담았다.
딸 장정혜씨는 “자식 된 입장에서 당신의 삶이 너무도 고단했음을 서툴게 적어 놓은 글을 보고 다시금 이해할 수 있었다. 젊어서 고생만 하다가 노인이 돼서 한글 배운 엄마가 인제야 자신의 삶을 살고 계신 것 같아서 행복하다”고 책 서두에 적었다.
한편, 이순연씨가 늦깎이로 한글을 깨쳐 쓴 글은 성인 문해교육 시화전, 라디오프로그램 한글 백일장, 한국시인협회 제35회 시인의 날 공모 등에서 상을 받았다. 151쪽, 1만2000원, 문화의힘. 전상헌기자 honey@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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