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은 석류(石榴)의 계절이다. 율곡 이이는 고작 3살 때, 외할머니께서 석류를 가리키며, “저게 무엇 같으냐” 묻자 “석류 껍질 속에 붉은 구슬이 부셔져 있구나(石榴皮裏碎紅珠 석류피리쇄홍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석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근한 과일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석류는 그 붉은 색이 고혹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살상용 무기를 떠오르게 한다. 그 이름 하여 수류탄(手榴彈)이다. 한자로 손 수(手), 석류 류(榴), 탄알 탄(彈)이니, ‘손으로 던지는 석류 폭탄’이라는 뜻이다. 수류탄은 영어로는 ‘그리네이드(grenade)’라고 쓴다. 터질 때 탄알 파편이 사방으로 퍼진다. 마치 석류가 부숴지면서 알갱이가 튀어나가듯이. 전쟁터에서 수류탄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7세기 초반이다.
잘 익은 가을이/ 알알이 박혀 있다// 바람이 지나는 아슬아슬한/ 길목에서// 순식간/ 팍!/ 터져버린/ 저 핏빛 수류탄. ‘석류4’ 전문(김종목)

스페인에서는 석류를 그라나다라고 한다. 이베리아 최후의 이슬람 거점인 ‘그라나다’를 상징하는 것도 석류이다. 그라나다에 가면 곳곳에서 석류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나 기물을 볼 수 있다.
석류는 그리스신화, 터키신화, 기독교의 성경, 이슬람의 코란, 힌두교의 경전, 불교의 경전에 모두 등장한다. 이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그리스 신화 속의 페르세포네 이야기다. 페르세포네는 어느날 꽃밭을 거닐다 하데스에게 납치되어 지하 세계로 끌려갔는데, 어머니의 강력한 요구로 다시 지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하데스가 건넨 붉은 석류 3개를 먹는 바람에 지하 세계를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1년 중 석 달은 지하 세계에서 하데스의 아내로 지내게 된다. 석류에는 치명적인 유혹의 이미지가 담겨 있다.
중국의 절세미인 양귀비도 석류를 사랑했다. 양귀비와 당 현종의 로맨스가 펼쳐졌던 중국 서안 화청지(華淸池)에는 지금도 석류나무가 무성하다. 현종은 양귀비를 위해 화청지 곳곳에 석류나무를 심고, 손수 석류의 껍질을 벗겨 한 알씩 양귀비에게 먹여줬다고 한다.
송나라 때 왕안석은 ‘홍일점(紅一點)’의 어원이 되는 시를 지었다. “만록총중 홍일점(萬綠叢中 紅一點) 동인춘색 불수다(動人春色 不須多)”. 해석하면 ‘푸른 잎들에 둘러싸여 홀로 붉게 핀 한송이, 봄 색깔은 굳이 많지 않아도 되네’정도 되겠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