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고아의 아버지’ 위트컴 장군 조형물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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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고아의 아버지’ 위트컴 장군 조형물 건립
  • 김갑성 기자
  • 승인 2023.11.0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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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전쟁 고아의 아버지’ 美 리처드 위트컴 장군이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 잠들어 있다.
위트컴희망재단과 위트컴 장군 조형물 건립을 위한 시민위원회는 오는 11일 오전 10시 부산시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평화공원) 내 위트컴 장군 조형물 부지에서 조형물 제막식을 갖는다.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묘지인 유엔기념공원에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전쟁 고아의 아버지’ 美 리처드 위트컴 장군이 영면해 있다.

제1·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백전 노장 위트컴 장군이 부산으로 오게 된 것은 6·25 전쟁 막바지였던 1953년. 미 2군수기지사령부 사령관으로 부임한 그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부산 시민들을 위해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위트컴 장군은 부임 직후 1953년 11월 ‘부산 역전 대화재’ 당시 군법을 어기고 군수창고를 개방하고 보광동 일대에 이재민 보금자리를 마련해 군사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위트컴 장군은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위트컴 장군은 또 대한미군 원조처(AFAK)를 통해 부산의 재건을 돕는 데 큰 힘을 보탰다. 특히 그는 직접 부산 메리놀 병원 건립을 추진했다. 병원 신축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령관의 체면’을 벗어던지고 직접 한복을 입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모금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954년 퇴역한 위트컴 장군은 한국에 남아 재건을 도왔다. 위트컴 장군은 1964년 한묘숙 여사와 결혼하면서 ‘푸른 눈의 한국인’으로 뿌리내렸다. 1982년 서울 용산 미8군 기지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그는 평소 원한 대로 ‘제2의 고향’인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올해는 위트컴 장군이 한국에서 별세한 지 40주기가 되는 뜻 깊은 해이다.

김갑성기자 gskim@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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