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속의 꽃(3) 목련꽃]한 해 풍경을 그리는 붓
상태바
[한시 속의 꽃(3) 목련꽃]한 해 풍경을 그리는 붓
  • 경상일보
  • 승인 2024.03.12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안순태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

새봄이다. 캠퍼스 목련나무엔 꽃봉오리가 막 부풀기 시작했다. 목련(木蓮)은 연꽃을 닮은 꽃이 나무에서 핀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가지 끝에 매달린 목련 꽃봉오리는, 가만 보면 꼭 붓처럼 생겼다. 그래서 목련꽃을 ‘목필화(木筆花)’라고도 한다.

고려 때 시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목련 꽃봉오리의 이런 모양에 착안하여 ‘목필화’라는 시를 지었다.



天工狀何物(천공상하물) / 하늘이 무슨 물건 그려 내려고
先遣筆花開(선견필화개) / 목필화를 먼저 피게 하였나.
好與書帶草(호여서대초) / 서대초와 함께
詩家庭畔栽(시가정반재) / 시인의 집 뜰에 심어 좋구나.

▲ 채용신의 화조도 중 목련.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 채용신의 화조도 중 목련.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서대초(書帶草)는 그 이름만 보면 ‘책을 묶는 풀’인데, 질겨서 책을 묶는 데 썼다고 하는 맥문동으로 짐작된다. 목련꽃과 서대초가 함께 자리한 시인의 집 뜰은 바로 이규보 자신의 집 뜰이다. 봄이 되어 목련 꽃봉오리로 그려지는 세상 풍경을 나중에 고이 수습하여 맥문동으로 엮어 책을 만들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시다.

붓처럼 생긴 꽃봉오리가 가장 먼저, 가장 가까이에 그리는 것은 바로 목련꽃일 것이다. 고결한 백목련의 빛깔은 사진으로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 꽃이 질 때는 또 어떤가. 여느 꽃들처럼 하늘하늘 나부끼지 않고 한 번에 툭, 지조 있게 떨어진다. 꽃이 지고 난 뒤 감잎처럼 생긴 도톰한 잎이 돋아난다. 고결한 꽃이 지고 난 자리에 돋는 잎도 제법 기품이 있다.

봄을 맞아 목련, 하면 떠오르는 시가 또 있다. 이문재 시인의 ‘봄날’이다. 대학 본관 앞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던 청년이 오토바이에서 내려 휴대전화로 백목련을 찍어대는 광경을 읊은 시다. 시인은 청년의 그러한 행동을 두고 “백목련 사진을 급히 배달할 데가 있을 것이다”라 눙치고 있다. 목련 꽃봉오리가 그려내는 올해 우리들의 풍경은 어떠할지. 그 풍경을 잘 갈무리하는 것도 잊지 않기를 새봄부터 다짐해 본다.

안순태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 곳곳 버려진 차량에 예산·행정 낭비
  • [지역민도 찾지 않는 울산의 역사·문화명소]울산 유일 보물 지정 불상인데…
  • 확 풀린 GB규제…울산 수혜 기대감
  • 궂은 날씨에도 울산 곳곳 꽃놀이 인파
  • [기고]울산의 랜드마크!
  • 이재명 대표에서 달려든 남성, 사복경찰에게 제압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