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관계의 기본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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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관계의 기본값
  • 경상일보
  • 승인 2024.03.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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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경 울산 천상고등학교 교사

기본값(default value)은 주로 컴퓨터 공학에서 사용되는 말로 별도 설정을 하지 않은 ‘초깃값’, 즉 ‘기본 설정값’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최근 들어 일상에서도 사용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마음의 기본값을 무엇으로 초기 설정하느냐에 따라 행동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글을 최근에 읽었다. ‘물건을 사지 않는다’를 기본값으로 설정한 사람과 ‘물건을 산다’를 기본값으로 설정한 사람의 소비는 현격히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꼭 구매할 이유가 있을 때만 구매하게 되지만, 후자는 물건을 사면 안 될 이유가 없는 한 구매를 하게 된다. ‘게임을 한다’를 기본값으로 정한 사람과 ‘게임을 하지 않는다’를 기본값으로 정한 것도 다르다. 전자는 게임을 안 할 이유가 없다면 무조건 게임을 하는 결괏값을 갖지만, 후자는 게임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 때만 게임을 할 것이다. 이처럼 기본값의 초기 설정은 삶의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간관계는 ‘이해’와 ‘오해’ 중 무엇을 기본값으로 설정하는 것이 현명할까? ‘오해’를 기본값으로 설정하는 것을 권해본다. ‘오해’를 기본값으로 정한 사람은 타인의 행동을 판단할 때,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게 되므로, 오해하지 않기 위해 상대를 대할 때 주의 깊게 관찰하고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즉 ‘오해’를 기본값으로 초기 설정해야,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3월 중순이다. 올해 담임을 맡게 된 고3 학생들도 처음 만났고, 새로 전입해 오신 스무 명 남짓의 선생님도 대부분 초면이다. 첫 만남부터 상냥하게 웃으며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무표정으로 인사조차 건성으로 받으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자칫 편견을 가지기 쉬운 학기 초이기에 어느 때보다 인간관계의 기본값을 ‘오해’로 설정하고 ‘이해’와 ‘공감’의 결괏값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이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이해’를 넘어 ‘공감’의 마음을 가지길 소망해 본다. ‘이해’는 머리의 영역이고, ‘공감’은 마음의 영역이다. 이해는 어떤 현상에 대해 이유를 찾아 사리를 분별하여 수용하는 것이지만, 공감은 상대가 느끼는 상황 또는 기분을 비슷하게 경험하는 심적 현상이다. 공감 없이 이해만 하는 사이는 진심 어린 소통을 하기 어렵다.

“‘이해’(Understand)란 말 그대로 ‘Under’(낮은 곳에)+‘Stand’(서는) 일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 서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없고, 상대방의 고통을 이해하면 누구와도 공감하게 됩니다. 어쩌면, 진정한 치유는 거기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김해영의 <당신도 언젠가는 빅폴을 만날 거야> 중에서 -

이혜경 울산 천상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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