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선생님, 저는 공부 안 해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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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선생님, 저는 공부 안 해도 돼요
  • 경상일보
  • 승인 2024.03.2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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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아 울산 화진초등학교 교사

“선생님. 저는 공부 안 해도 돼요. 엄마가 공부 안 해도 된다고 했어요.”

교사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이다. 주로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이 부모님 핑계를 대며 하는 말일 테지만, 공부를 선택사항 정도로 여기는 아이들의 말이 안타깝고, 그렇게까지 공부를 싫어하게 된 현실이 참, 슬프다.

공부는 왜 하는 것일까.

공부는 우선, ‘견뎌내는 힘’을 길러준다. 누군가는 공부가 재미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에게 공부는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고독하고 지루한 일이다. 심지어 결과가 늘 내 노력만큼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공부를 통해 몰랐던 걸 깨우치고 성취감을 느껴본다면, 지루하고 힘든 과정쯤은 ‘견뎌내고자 하는 힘’이 쌓이게 된다. 이내 곧 견뎌내는 힘은 자기 삶에서 노력하고 인내하는 힘으로 확장된다. 그게 대학이든, 아니든 간에 말이다.

공부는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높인다. 학교는 세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학문을 가르친다. 우리나라의 뿌리부터 세계사까지,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부터 우주라는 공간까지, 하나 둘 셋 같은 수 세기부터 미적분까지. 물론 교사인 나조차도 모든 학문을 꿰뚫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다양한 학문을 경험함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깊어지고 넓어진다. 알아야, 보인다는 말이 있잖은가. 우리나라는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어떤 자세로 주권을 행사해야 하는지, 나는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지. 공부해야 세상사를 이해하고 내 삶을 고찰할 수 있다. 세상을 배우는 일이 내 자아를 고민하고 내 삶을 바로 세우는 일인 것이다.

공부는 메타인지를 높인다. 다양한 학문을 공부해 보며, 내가 어떤 분야에 자신이 있는지, 혹은 내가 어떤 부족한 점이 있는지 마주하게 된다. 내가 나를 성찰하는 메타인지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도 잘 알지만, 내게 어떤 약점이 있는지도 정확히 안다. 그래서 본인의 진로도 재능에 맞게 선택할 줄 안다. 하지만, 공부는 내 몫이 아니라 여기는 아이들은 10년이 넘는 긴 학생 시절 동안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성찰해 볼 기회’를 흘려보낸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모든 국민은 교육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최소한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부는 어느새 ‘인간다운 삶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출세를 위한 공부’로 평가 절하되었고, 누구나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사항쯤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된 데에는 학교와 교사의 책임도 크다는 걸 안다. 교사로서 면목이 없다. 하지만, 교사이니 더 외쳐본다. 성적을 떠나, 공부는 세상을 탐색하고 나를 성찰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통로이자 나를 보호하는 무기와 방어막이 된다고.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당장 내 성적을 결정하는 것이지만, 공부를 ‘하고 안하고’는 내 인생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공부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것이고, 그래야 내 인생을 ‘제대로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외쳐본다.

김보아 울산 화진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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