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민의 불역유행(不易流行)(10)]예술문화와 문화예술의 차이점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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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민의 불역유행(不易流行)(10)]예술문화와 문화예술의 차이점을 아시나요
  • 경상일보
  • 승인 2024.03.2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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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철민 울산시 국제관계대사 전 주헝가리 포르투갈 대사

2023년 5월26일 경상일보 오피니언 면에 게재된 첫 번째 칼럼 제목이 ‘꿀잼 문화도시 울산을 꿈꾸다’였는데, 어느덧 열 번째 글이다. 매달 초 기고문을 신문사로 보내고 나면, 다음 달에는 또 어떤 주제로 독자들과 만날까 머리를 싸매게 된다. 그런데 고민이 해결되었다. 얼마 전 울산 문화예술회관을 동행했던 친구가 예술문화회관으로 이름 짓지 않은 이유가 뭘까? 하고 궁금해 했다.

필자의 이해로는, 예술은 미를 창조하는 활동이고, 문화는 사회구성원이라는 공동의 가치관과 삶의 행동방식을 의미한다. 그런 맥락에서, 문화예술이란 집단내부에서 널리 공유하면서, 동일한 이해를 바탕으로 표출된 예술, 즉, 영어로는‘cultural art’ 또는 ‘culture-based art’쯤 되겠다. 그렇다면, 문화예술회관이란 이름은 민족적 정서가 기본적으로 깔린 예술 공연을 선호하는 곳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 동양과 서양의 ‘Art’와‘Culture’를 모두 포괄하여 공연하는 장소를 의미하고자 한다면 예술문화회관이 좀 더 바른 표현이 아닐지.

▲ 헝가리 오페라 하우스 재개관식에 초청되어 본 공연을 기다리는 박철민 대사.
▲ 헝가리 오페라 하우스 재개관식에 초청되어 본 공연을 기다리는 박철민 대사.

그런데 현실은, 부산학생예술문화회관 등 극히 예외를 제외하고는 전국 각지에서 문화예술회관이란 명칭이 대세이다. 다만, 영어로는 ‘Culture and Art Center’로 명기하고 있어,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서울 소재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도 작명 당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유럽은 대체로 건물명에 예술과 문화를 함께 병기하지 않는 경향이다. 규모, 디자인, 내부 장식 등에 남다른 기품과 웅장함이 있음을 자랑하고 싶을 때는 ‘Palace’, ‘Hall’또는 ‘House’를 붙여 한껏 품격을 높인다.

환갑을 목전에 두고 구정이 막 지난 어느 날, 시청 앞 정원에 어느새 피어있는 매화꽃을 예쁘다며 뚫어지게 보다가, 메리 홉킨스가 노래한 올드 팝송 ‘Those were the days(그런 날도 있었지)’의 가사와 멜로디가 문득 떠올랐다. “오, 친구야 우린 나이를 먹었어도 철은 들지 않았나보다(Oh, my friend, we’re older but no wiser). 가슴속에 담긴 꿈들이 아직 그대로 있으니(For in our hearts, the dreams are still the same).”

세월이 흐르면 나이 드는 건 순리이고, 늘어나는 나이만큼 더 현명해 졌다면 그만인데, 과연 “나는 어떤가?” 다행스럽게도, 10년 전과 달리 클래식 선율이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게 되고, 멋진 예술작품을 보면 잔잔한 미소가 절로 나오니, 고마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부터는 러시아 음악이 가슴에 와 닿는다. 작곡가들의 독특한 이름만큼이나 특색이 있고, 묵직하고 깊이가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물론이고,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2번과 피아노협주곡2, 3번,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5번과 왈츠2번,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과 세헤라자데,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협주곡2번과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을 듣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고 귀가 열리고, 경외감과 감탄이 뒤따른다. 좋은 예술작품과 맛있는 포도주를 그러하지 못한 것과 구별할 수 있게 되었으니, 헛되이 나이만 먹은 건 아니라며 달랜다. 맞는 말인가?

울주문화예술회관 개관 15주년 특별기획공연 ‘김동규와 함께하는 신년음악회’를 즐길 기회를 가졌다. 막간없이 진행된 두 시간여 공연이 순간처럼 지나갔다. 다양한 레퍼토리와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예술가들의 높은 수준과 조화를 이루게 되면, 청중들의 반응은 뜨거워진다. 이곳이 부다페스트 오페라하우스인가?, 아니면 비엔나 필하모닉오케스트라 공연장에 와 있는가? 즐거운 착각에도 빠져본다.

이태은 객원 지휘자의 진지하고도 유쾌한 지휘가 돋보였고, 울주심포니오케스트의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으로 시작돼, 바이올리니스트 박진수, 첼로이스트 조윤경, 소프라노 이윤경과 바리톤 김동규의 투우사의 노래까지 모든 공연들이 섬세하고도 환상적으로 이어졌다. 무대 위 주인공들과 무대 밑 청중들이 하나가 되었고, ‘올레’의 환성을 함께 내 지를 때는 모두가 투우사였다. 판소리꾼 정윤형은 심청가중 ‘심 봉사가 황성 올라간다’ 대목을 풍자적인 연기와 발군의 소리로 엮어, 전통음악의 풍미와 진수를 한껏 드높였다. 서양 클래식과 판소리라는 상반된 장르를 같은 무대에서 선보여도 불편함이 없었고, 관객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유럽 근무시, 비엔나 필하모닉 공연과 부다페스트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에 초청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처럼, 요한 스트라우스 부자의 ‘봄의 소리’ 왈츠와 ‘라데츠키 행진곡,’ 비토리오 몬티의 ‘차르다시’와 앙증맞은 소년 소녀들의 발레는 관객들의 눈과 귀를 호강시키기에 충분했다. 브라보! 지난해 8월25일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선보인 울산시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 ‘운명’도 평가할만하다. 브람스, 모차르트의 대표곡과 베토벤의 교향곡 5번으로 구성되었는데, 잔잔한 감동과 격정적 전율이 쉴 새 없이 몰려왔다. 매달 정기연주회를 통해 러시아 출신 마에스트로 니콜라이 알렉세예프의 지휘 아래 시립교향악단의 실력이 세련미를 더하고 있음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그날 공연은 특별했다.

헝가리, 포르투갈, 러시아와 네덜란드에서 살면서, 유럽의 예술과 문화가 얼마나 대중화돼 있는지를 목도했다. 실내외 공연장에서 크고 작은 공연을 일 년 내내 즐길 수 있고, 거리공연도 일상이다. 가성비 높은 즐길거리가 넘치고, 어려서부터 수준 높은 예술을 접할 수 있기에, 애호층이 그만큼 두터워지는 것이다. 부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태화강위 오페라하우스 건립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울산시민들의 문화적 욕구가 사시사철 충족될 수 있다면, 문화예술이든, 예술문화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박철민 울산시 국제관계대사 전 주헝가리 포르투갈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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