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속의 꽃(4) 배꽃]달빛에 빛나는 어여쁜 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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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속의 꽃(4) 배꽃]달빛에 빛나는 어여쁜 자태
  • 경상일보
  • 승인 2024.03.2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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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범중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명예교수·'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

배꽃은 남부지방에서 3, 4월에 개화한다. 배는 상큼한 식감을 자랑할 뿐 아니라 전통 음식인 갈비찜이나 육회 등의 요리 재료로 쓰인다. 배를 뜻하는 한자 ‘리(梨)’는 이별을 뜻하는 ‘리(離)’ 자와 동음이어서 이별을 의미하므로 배는 친구나 연인 사이에는 선물하지 않은 과일이었다.

배꽃은 낮에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달빛 아래 하얗게 빛나는 모습이 특히 주목받았다. 달밤의 배꽃은 달빛 속의 매화와 더불어 봄밤의 운치 있는 정경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자연스레 떠오르는 작품이 이조년(李兆年, 1268~1343)의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銀漢)이 삼경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라는 시조이다. 배꽃이 환하게 빛나는 삼경 달밤에 뜻 모르고 울어대는 소쩍새의 한 맺힌 소리에, 잠 못 들어 뒤척이는 다정다감한 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밤중에 만나는 배꽃의 정취는 아쉽고 한스러운 마음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소재였다.

구름 낀 바다는 푸른 하늘에 아득한데
미인은 멀리 떠난 이별을 슬퍼하네.
만 리나 떨어진 문에서 어찌 견디랴?
홀로 배꽃을 비추는 달빛 속에 문을 닫는다.
雲海渺靑蒼(운해묘청창) 美人傷遠別(미인상원별)
那堪萬里門(나감만리문) 獨閉梨花月(독폐이화월)

▲ 울산 무거동 정골 돌배나무(수령250년) 꽃
▲ 울산 무거동 정골 돌배나무(수령250년) 꽃

이 시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서우(李瑞雨, 1633~1709)의 <이화오절(梨花五絶)>의 하나로, 멀리 떠난 임과 이별한 뒤 홀로 배꽃을 비추는 달빛 속에서 문을 닫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달은 떠나간 임의 얼굴이 연상될 정도로 그리움의 강도를 심화한다.

지금 천지에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제각기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고 있지만, 달빛 비치는 배꽃의 정취는 쉽게 누리기 어렵다. 울산은 특히 배가 유명한 곳인 만큼 올봄에는 그 정취 속에 흠뻑 젖어봄도 좋을 듯싶다.

성범중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명예교수·<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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