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포옹과 새로운 발걸음/김경완 구술자③]힘든 직장생활, 나를 위로한 음악과 영원한 동반자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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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포옹과 새로운 발걸음/김경완 구술자③]힘든 직장생활, 나를 위로한 음악과 영원한 동반자의 만남
  • 배정환 기자
  • 승인 2024.04.17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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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완 구술자(오른쪽), 김영해 기록가(왼쪽)
김경완 구술자(오른쪽), 김영해 기록가(왼쪽)

울주문화원이 2023년 진행한 아카이빙 사업 2023 디지털 생활사 아카이빙 '마지막 포옹과 새로운 발걸음 - 울주군 신리 마을 사람들의 생업을 중심으로'를 통해 채록한 일화를 게재한다. 

10명의 기록가별로 면담한 구술자의 이야기를 그대로 남았다. 

사라지는 울주군 신리마을을 기억하고 구술자들의  삶속에 남아있는 신리마을의 기억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며 구술자들의 생활을 되돌아 본다.

이번 면담은 김경완 구술자와 김영해 기록가의 이야기를 일부 각색하여 들어보도록 한다. (편집자주)


- 지난 태풍 소식과 대비하는 일들

요번 태풍 때 우리 요 바닷가 인접 해가 있는 집들은 태풍 때 인자 파도가 마이 치면 집까지 이래 물이 마이 이래 밀리 올라 오뿜니더. 그래서 고거 인자 집안으로, 골목 안으로 쓰레기하고 인자 바닷물이 유입 안 되게끔, 못 들어오게끔 그래 막아 논겁니다. 여기 한수원에서, 한수원에서 지원받아 가지고, 한수원 시공업자들이 나와서 뭐 포크레인 하고 장비들 해가 고래 다합니다.
요번에 그래도 뭐 비가 저번 태풍보다 뭐 작게 와가지고, 그래도 피해는 마이 없었습니다.


- 어린시절 생활전선으로 나가며...

직장을 뭐 갈빗집이랑 이래 가셨잖아요.
일단 시험을 치고 그때는 뭐 이것저것 뭐, 다른 여유가 없으니까, 그때 시내라고는, 부산 시내라고는 처음 나가 보니까 건물도 엄청 크고, 거 어데 있었는고 하면 해양고등학교가 저어 남부민동 있었습니다. 그르께네 남포동을 탁 거치 가지고 인자 그래 가니까, 그때 또 뭐, 거 시험 쳤다고 또 동네 형님 저 친구 저거 형님이 같이 갔거든요. 그래가 그때 남포동에 가가지고 고서 내려가 뭐 맛있는 거도 묵고 하니께네 사람들도 많고 마, 촌놈이 좀 떨리더라고. 사람들이 마 엄청시리 많으니까 와, 진짜 촌에 있다가 그런데 가니까 좀 부끄럽더라고, 사실은. 진짜 두근두근하고 마, 부끄럽고 이렇더라꼬. 그래 거 보모(보면) 옛날에 보모 거 어 잡채 같은 거 이런 거 해가 팔고 했는 거 그런 기 인자 생각나거든요. 
그런 거도 묵고 그래 보니까 ‘와, 이런데 오가 함 살고 싶다.’ 그래 인자 그때 그런 꿈을 조금 이제 품었지. 갈빗집에 가기 전에는 음, 여 나오가지고는 내가 뭐 요기 살기 싫다, 아, 나는 학교도 다니는 거도 싫고. 그래서 어떤 계기로 해서 아마 취직을 하게 되었어요, 동네 요, 동네 어른이 소개로 해 가지고. 고래 고 취직을 하게 되었는데, 거 가니까 이 연탄 가, 뭐, 뭐, 거 뭐라 합니까? 엘피지(LPG)가스. 엘피지(LPG)가스 거 배달하는 데라. 그래 내가 거 한 한(1) 달 정도 있었는데 몬있겠더라꼬. 덩치도 내가 왜소했거든. 키도 작고 왜소하고 하니까 그거를 잘 못 지겠더라고. 
뭐 좀 인자 해보니까 안 되겠더라고. 그래 집에 와가지고 친구하고, 그때 친구하고 내하고 취직을 하게 됐지, 나가가지고 무작정, 무작정 부산으로 갔지. 무작정 부산으로 갔는데, 그때가 아, 범내골인가? 하이튼 그쪽, 그쪽인지 지금 생각하면. 그때 하이튼 고무공장도 있고 그랬는데. 

그때 첫 달 월급은 얼마나 주던가예?
그때 첫 달 월급이 한 칠만(70,000) 원 됐나? 예, 그래 밖에 안됐어. 친구 하나는 한(1) 달 월급 받고 가뿌더라고. 지는 몬 있겠다면서. 화~ 아, 그래 나는 인자 내 혼자 인자 외로웠지, 글때 그 당시에는 인자 내가 뭔 꿈이 있었는고 하면, 나는 몸도 빠르고 싸움을 엄청 잘 했거든. 그래 나는 권투선수를 되고 싶어가지고, 그래가지고 이래저래 하다가 거기서도 한 몇 개월 있었어요. 몇 개월 있다가 안돼가지고, 하이튼 간에 이래 어떤 연줄이 돼 가지고 인자 갈빗집하고 이제 이래 가게 된 거지.

갈빗집에 갔을 때가 몇 살 때였나요?
갈빗집에 갔을 때가 한 열아홉(19) 살? 열여덟(18) 살 바뀌고 한 열아홉(19) 살 정도 되었을 겁니더. 갈빗집 뭐 그런 계통에 인자 생활을 하니까, 아, 자꾸자꾸 인자 소개가 되는 기라, 인자 그런 계통에. 옛날에 처음에 해운대 뭐 푸른 동산 같은데 거 있다가, 또 다른 또 기술을 배우고 싶어서 또 달맞이로 갔다가, 송도로 갔다가, 영도로 갔다가, 계속 이래 돌아다녔더라고. 인자 그래 돌아다니면서 기술은 마이 배웠지요.

김경완 구술자
김경완 구술자

- 힘든 직장생활속에 활력이 된 음악.

여러군데, 그렇게 기술을 배우시면서 음악학원을 다니셨다면서요?
예. 음악학원은 어… 저 어데, 동네가 어덴데, 거 부산 거 하이튼 간에 거도 음식점 임더, 음식점. 음식점에 거 다니다가, 짬짬이 고 인자 지금 같으면 브레이크 타임 같은데 한 세(3)시에서 다섯(5) 시 사이, 고 때는 인자 낮잠 자는 시간이라, 식당에는. 낮잠 자는 시간인데 인제 고 때 내가 인자 학원을 다녔지. 우리 흔히 이야기하는 오브리라고, 오브리. 오브리 인자 오르겐 치면서 인자 손님들 노래하면, 지금 같으면 옛날에 그거 가라오케 나오기 전에 오르겐이 미드나이트였거든. 인자, 인자 오르겐이 조금 저거 하고 가라오케 나오고, 그다음 노래방이 나오고 이래 변천사가 생깄는 기라. 그때 오르겐 치면서 손님들 맞춰 주고. 

군 복무하면서도 또 음악 생활을 같이하셨다 하셨잖아요?
그때는 우리는 인자 단기사병이라 해서 옛날에는 우리, 우리 선배들 보모 모자에 보면 방위. 방위 인자 이랬는데, 우리는 인자 단기 사병 이래서 그때 십팔(18) 개월인가 아마, 십육(16) 개월 인가 아마 그래 근무를 했거든요. 출퇴근 집에서. 출근, 퇴근, 주간 조, 야간 조 이래 따로 있는데, 어, 주간 조는 보통 일곱(7) 시 돼서 가면 여섯(6) 시 정도 이래 퇴근하고, 야간 조는 뭐 여섯(6) 시인가 이래 투입해서 인자 새벽까지 인자 교대 근무를 하거든요. 진지에 나가서. 옛날에 여기 다 이런 데 보모 진지였거든.
그때는 수류탄 두(2) 개 딱 들고 진짜 실탄 딱 넣고 인제 이렇게 근무할 때라, 그때는. 근데 우리는 계속 주간만 했죠. 그 저 훈련소 나오가지고 거, 대대에 배치하면서 자대에 인자 중대에 내리 오가 중대장한테 내가 사회에서 이런 이런 생활도 했고, 거 부모도 연로하고, 그래가 내가 좀 벌이면서 살아야 된다 라고 하니까, 중대장 그래도 조기 출퇴근 이래가지고 인자 위에 보고해서, 어, 이 사람은 조금 이렇게 일찍 퇴근하고 조금 늦게 이렇게 좀 출근하는 걸로 해가 만들어 가지고, 어, 인자 고래가지고, 내가 출근은 조금 아마 한 아홉(9) 시나 열(10) 시 돼가 출근하고, 퇴근은 한 네(4) 시 정도 돼가 하고 그래 했거든요. 예, 그러이까 겨울에는 좀 빨리 해가 지니까. 그래가 일광에도 있었고, 가까운데 정관에도 있었고, 마치면 계속 인자 택시 같은 거도 타고 렌트카 같은 거 타고, 어, 이래가 그런대로 생활을 그래 했어.
그때는 힘 드는 거는 몰랐지. 그때 나이가 젊으니까, 어쨌든 내가 하는 거도 하고, 내가 뭐 생활에 보탬도 하고 이래 하니까. 뭐 그 가지고 뭐 생활은 다 했지.

- 나의 인생, 영원한 동반자의 만남

그럼 군 복무 마치면서 부인을 사귀어서 데리고 왔다고 하셨잖아요? 부인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지금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거 같은데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나시길래요?
한 여섯(6) 살 정도 차이 나는 거 같은데. 내가 인자 우리 집사람이, 우리 집사람한테 인자, 왜 우리 집사람한테 이렇게 인자 어린 나이에 내가 저거 했는고 하면 내가 유흥업소 생활을 하니까 그런 계통 부류에 여자들을 좀 마이 사귀게 되었거든요. 그래그래 만나다가 사회도 진출 안 한 갓, 인자 갓 인자 졸업, 졸업 시기에 다된 그런 걸 딱 만나 가지고 보니까, 너무 때가 안 묻었는 거라.   

신리마을회관
신리마을회관

- "뭐 어디 나 좀 데려 가소.” 

하~ 지금 이 마을에 안 사는데, 고, 고호원 씨라고, 자기 부친은 고정관 씨고 그분은 우리 어릴 때 돌아가셨고. 그분이 인자 상선을 타가지고 내가 인자 거 우리 자기가 귀국했더라고. 원래 상선 타다가 귀국하면 한 몇 개월 이거 집에 기간이 있거든요, 다른 배로 가기 전에. 고 기간 때 내가 인자 만나게 돼가지고, “형님, 이래이래 돼가지고 내가 악기를 친구가 잽혀 묵아 뿌리고 내가 지금 일 하러도 못 가이끼네(가니까) 내가 아(애기)도 있고 이라이께네 뭐 어디 나 좀 데려 가소.” 이라니까, 그때 하~ 이름이 우성, 우성, 우성까지는 기억나는데 우성 뒤에 뭐가 있어 그 회사를 소개시켜 주더라, 자기 다니는 회사라. 거기 가니까 저 부산역 옆에 거기 있더라고. 그래 고 가가지고 이력서 쓰고 뭐 쓰고 이래하니까 취직이 되대요? 그래 한 한(1) 달 있다가 신체검사 하고 뭐하고 해가 한(1) 달 있다가 내 혼자 갔다니까. 

요서 인자 어어 김해공항까지 가서, 김해공항에서 인자 서울 내려서 인자 거, 거기까지는 서울에 가니까 인자 거 회사 관계자분들이 오가지고 사람을 다 인솔 하더라꼬. 인솔해가 인자 뭐 설명을 해주더라고. 뭐 대만까지 같이 가는 일행들이 있었어. 거 대만까지 가니까 내보고 인자 혼자 가야된다 하더라고. 그래 인자 대만까지 가서 다른 사람들 다 내리 버리고, 나는 또 고서 인자 또 비행기를 또 공유를 했는 기라. 경유를, 다른 비행기 갈아타는 거 있죠? 그래가 또 다른 비행기를 갈아탔어. 고 거 갈아타는 거까지는 거… 그 사람이 갑판장인가 그런데 내보고 가리켜 주더라고. 이래이래 해가 게이트 남바(number)만 찾아가서, 뭐 사전에 교육은 좀 받았는데 당황하면 잊아 버리잖아요. 안되면 어떤 항공사 거, 거기에 가서 물어봐라. 그라모 게이트 남바만 가르켜주모, 그 게이트 남바 앞에 있으면 딱 뜬다고 그래 쌌대. 그래가 대만까지는 그래 가르쳐 주더라고. 인자 대만에서 인자 혼자 타가 인자 취리히에서 내렸는데, 취리히에서 거기는 뭔고 하면 비행기를 갈아타는 기 아이고, 취리히에서는 뭐, 뭐라더라?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뭔지를 몰랐는데, 연료공급을 받고 안에 비행기 청소하고 이랬는가 봐. 거기서 한 삼십(30) 분 이렇게 바깥에 못 나가고 고 휴식 공간 같은 데 있더라고. 인자 거기서 가만 있는데, 걱정이 마이 되더라꼬. 내가 처음이니까 이기 뭐 가는 건지 안가는 건지, 이, 이거도 [손으로 말하는 시늉을 하며] 안 되지. (웃음) 이거도 안 되고, 한국 사람도 없제, 그러이께네 마 엄청시리 걱정이 마이 되대. 그러이께네 뭐 아가씨한테 이래 물어보니까 “이 우째해야 되노” 이래이래 하이께네 무조건 요 있어라 하더라고. 그래 있어가 다시 인자 그 비행기 해가 고 인자 남바대로 찾아가 앉아가 갔는데. 그래가 인자 로마에 내렸거든요. 로마에 내리면 인자 또 국내선을 갈아타야 된다꼬. 와~거 뭐 하이튼 안 되는 영어 물어가지고 로마공항이 얼마나 큰지, 그 밑에 또 뭐, 뭐 무조건 뭐, 이거 해가 마아 이거 해가 하니까 저리저리 가라 하대, 이거(비행기표) 비아(보여)주니까. 그래가 마 졸졸졸졸 따라가다 보니까 마, 거 비행기 시간이 한 오(5) 분 남가 놓고 내가 찾았거든요. 그러니까 고 가가 인자 카타니아 가는 거, 거 비행기를 탔거든요. 큰 비행기 타다가 카타니아 가는 거는 쪼끄만 하더라꼬! 한 사람 한 스무(20) 명 타고 가는데 옆에 프로팰라 돌아가는 거 보이더라고. 와, 거는 좀 겁나대. 비행기가 떨어질 거 같애서. 고 내리니까 인자 에이전시가 인자 영어로 내 이름 딱 간판 들고 있더라고. 근데 그 사람 생긴 기 똑 산적같이 생깄더라고. 막 수염은 이래가. 그래가 인자 뭐 대화도 안 되고 이라니까 무조건 호텔 방 하나 잡아 주대요. 고 한 이틀 있으니까 저 앞에 인자 배, 배 하면서 인자 통선을 타고 인자 가더라고. 고 통선을 타고 들어가는데 배가 마 진짜 섬만 한 게 있데. 그래 배 보니까 사실 겁을 나더라 고. ‘내가 이 큰 배를 내가 어째 타는고’ 싶아가. 그래 막상 또 타고 다니니까 또 마 큰 배가 좋대요. 파도 치도 까딱없으니까.

처음 타셔서 뭐 맡은 일이 어떤 일이었을까요?
갑판원. 갑판원이라도 거, 갑판원도 일(1)갑, 이(2)갑, 삼(3)갑, 사(4)갑, 오(5)갑, 육(6)갑이 있거든요. 최고 인자 들어가면 거도 미나라이(초보)라고 하는데, 거 육(6)갑이라. 인자 최고 들어오면 최고 초짜배기 시키는 거. 인자 거서 인자 좀 하다가 티오(TO)가 생기면 오(5)갑 올라가고, 사(4)갑 올라가고 인자. 계급이나 마찬가지지. 별 의미는 없심더. 

이태리 옆에 있는 섬인데 아직까지 기억 몬하겠네. 그 이태리, 아, 몰타, 몰타. 아, 몰타. 어, 몰타 섬입니다. 몰타 섬은 이태리 옆에 있는 조그만 한 나란데, 섬도 얼마 안 큼니더. 거도 우리도 그때 거기 가보면 인자 도크 장이 있어, 도크 장이 뭔고 하면 배 수리하고 하는데. 우리가 거 배 수리하는데 한 십오(15)일 정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거 인자 섬을 회사서 인자 거 관광을 시켜 주더라고. 그때 다 사진을 찍은 겁니더. 

신리마을 전경
신리마을 전경

- 미역양식 어장

저 같은 경우는 인자 몸이 아파서 별로 안 좋아서 처음에 내려올 때, 음… 미역 경험이 없으니까 인자 우리 그 옆에 나사리에 친구가 있거든요. 어, 그 친구한테 인자 의논 해가 같이 했는데, 우리는 처음에는 인자 미역을 건조를 해가 마이 팔았죠. 건조를 해가 팔고, 또 생초는 일부… 생초는, 생초는 인자 생미역. 고거는 일부 팔고, 그때는 건조를 해가 마이 팔았죠. 건조하는 거는 잠잘 시간이 없어요. 하루 종일 일이라. 새벽에 가서 한… 새벽에 어떤 때는 늦게, 늦게 나가면 한 세(3)시 정도 돼가 나가서 미역 해가오면 한 다섯(5) 시 정도 되면, 인자 그때 인자 미역 너는데 싣고 올라가거든. 그때 인자 마 우리가 말리면서 마이 했다고. 싣고 올라가면 아줌마들 오가 있으면, 거기 풀어주면 미역, 그때 부친하고 모친 다 있을 때니까. 그때 미역 장만해주면 인자 너는 사람들은 인자 다이(미역 말리는 판) 떼기(개당)라고 하지. 하나에 열페기(포기)씩 그기 인자 그때 다이 떼기 천(1,000) 원인가 이래 했는데. 인자 그라면 그 사람들이 널고 나면 우리가 또 한쪽만 마르면 한쪽 뒤 뒤비야(뒤집어야) 될 거 아입니까? 또 뒤벼 주고 또 저녁 되면 마르고 이라면 또 건조기에 넣어야 되거든. 마르면 건조기에 넣고 건조기가 계속 인자 밑에서 바람이 올라오니까 안 뒤벼 주면 이렇게 미역이 이렇게 턱 뒤비져 뿌거든. 그라모 또 중간에 나오가지고 한 열(10) 시나 정도 돼가 건조기 빼 가지고 다시 뒤벼 주고, 그래하면 인자 또 갔다 오면 그다음에 해 놘(놓았) 거는 거 말랐을 거 아임니까? 하루 종일 돌리며. 말라면, 새벽에 또 미역 해가 다섯(5) 시 돼가 풀어주고 또 하고, 고 뒷일 할 동안, 거 인자 미역 널 동안 밑에 오가 인자 단을 만드는 거라. 단을 만들어서 인자 갑바(대형 비닐 포장) 같은데 인자 보관을 해 놓고, 어, 고래 해 놓고 또 올라가서 또 미역 뒷일하고, 미역 뒷일하고 또 이라모 또 미역 찌끄라지 나온다 아임니꺼? 그런 것도 다 버리고. 그라면 나중에 또 고 정리하고 나서 저녁에 싣고 내려와서 다시 건조기 넣어가, 그기 잠잘 시간이 없는 기라, 계속 그렇게 반복이 되는 기라. 

신리마을 전경
신리마을 전경

그렇게 어렵게 하셔 가지고 일(1) 년 농사를 하시면 수익은 얼마나 나시나요?
수익은 마이 안 나드라고, 보기보다. 수익은 일(1) 년에 해보니까, 뭐 한 이천만(20,000,000) 원? 그 당시에. 이천만(20,000,000) 원인데 에… 내가 인자, 저는 처음에 와가지고 처음이니까 엄청시리 깔끔하게 했어. 근데 대변에 저쪽에 인자 거, 우리 대변에 가다 보면 특산물 파는 데 있더라 아입니까? 개별적으로 장사들이 많거든. 젓갈도 팔고 뭐, 다시마도 팔고 미역도 팔고 멸치도 팔고 하는데, 인자 거기 내가 판매자를 하나 내가 소개 받았는 거라. 거 내 미역을 한번 가져가 보더만은 미역하고 다시마하고 계약을 하재. 그래가 거 일억(100,000,000)원 어치까지는 사 줄 테니까 함 해보자 하더라고. 그래가 그때 선금을 좀 받고, 그래가 인자 미역을 좀 하고 마 이래 중간, 한, 한 오륙천만(5~60,000,000) 원까지는 했을 기야, 했는데, 그 이후에 누가 인자 고발을 해뿟드라고. 고발을. 나는 그게 인자 내가 여 바다 일을 안 해봤으니까, 나는 우리 친구가 그냥 이거를 이 어장 사면 괜찮다 해서 그냥 거 샀거든. 그람 거 내 어장인 줄 알았어. 거 어장도 인자 허가권이 있는 거라, 허가권. 우리 말하는 자동차 등록증 있듯이, 거 허가권이 있어야 되는 거라. 나는 허가권 없는 거를 거 무허가를 사뿟는 거라. 우리 친구가 이제 이때까지 그런 일이 없었으니까 서로 고발하고 이런 관계가 없었으니까. 근데 우리 동네서는 인자 배 아픈 거는 못 본다고 누가 돈 마이 벌고 이라니까 배 아파가 이제 고발을 해뿟네. 해양경찰에. 나는 거 뭐 모르지, 이 허가권이 있는지 없는지 자체를. 이제 그러니까 조사를 와가 허가권은 없다. 니는 불법이다. 다 잘라라. 그래가지고 결국 그때 내가 거 어민후계자까지 되어있었는데, 어민후계자도 다 탈락이 되고, 어민후계자 하면 뭐 정부에서 지원금 나오는 거 거도 다 인자 배상해 주야 되고. 그래가지고 내가 그때 엄청시리 어려운 시기를 겪었죠.

그때 내 어장 하나에 내가 삼(3)모작까지 했거든. 여기는 삼(3)모작이 없었어요. 나는 잠잘 시간도 없이 그때 삼(3)모작까지 했다니까. 내가 생초를 엄청시리 빨리 감았어. 감아가 그 기 포자가 녹으니까, 어, 물 좀 저거 광합성작용을 적게 하도록 포자를 안 죽이야 되겠다 해서 한 칠,  한 칠(7), 팔(8) 매다(m)까지 인자 내려서 길렀거든, 그래 포자가 안 죽더라고. 포자는 물이 떠셔(따뜻해)서 죽거든. 그래 그러니까 그 기 성공을 해뿟는 거라. 그래 그다음부터 내 흉내 낸 다고 이(2)모작, 삼(3)모작 하더라고. 그래 거 인자 십이(12) 월 달, 십이(12) 월 달 되기 전에 이미 일(1)차로 감았는 걸 내가 다 빼묵아 뿌는 기라, 근데 그때는 미역값이 좀 비쌌거든. 처음에 나올 때는 그때 과메기 저거 이래 하고 맞추고 하니까. 이제 그때는 비싸가 마이 빼묵고, 고 자리에는 인자 다시마를 감는 거라. 다시마를 감고, 다시마도 부지런해야 되거든. 다시마는 일일이 하나하나 다 쳐주야 다시마가 이래 굵어진다 아입니까? 인제 그래가 내가 인자 내 따무네(때문에) 다 이(2)모작, 삼(3)모작 했는 거지. 거 나는 인자 끽 나가리 돼뿌고.

- 당진화력발전소 취직

혹시 당진화력발전소 일을 하러 가셨다 하는데 그거 이야기도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당진 화력은 인자 이게 어장을 못 하게 되고, 동네 형님이 인자 고, 고쪽에 일을 하시는 분이 있었어. 최실근 씨라고, 그분한테 이야기 해가지고 어 당진 화력 그때, 화력발전소 짓는 데 내가 갔지.
이제 중량물이라 해서 무거운 거. 그러이께 막 체인블록 뭐 끌어서 뭐 발브(밸브) 같은 거 연결하고, 기계 같은 거 조인(join)하고 하는 거 그런 걸 했거든. 아 그래가 뭐 일단 거를 중량물 다룬다 하거든. 근데 우리 보통 보면 중량물 다루는 비계. 어, 비계라 하거든. 그래 고를 뭐 거 크레인 가지고 마, 장소 협소한 공간 같은 데 있잖아요? 근데 예를 들어서 뭐 펌프라든지, 뭐 이런 밸브라든지 큰 게 인자 들어가거든. 그런 거를 인자 크레인 오면 이거 가지고 체인블록 같은 걸로 해가 땡겨가 억지로 인자 맞추는 거라. 땡겨가 그 큰 거를. 그라믄 볼트 딱 채워가 가세 꺼(가장자리 꺼) 끼우고. 아, 그런 거를 했죠, 거기서.

-거가대교 공사

거가대교 공사 가셨을 때 몇 살쯤, 몇 년도 신지, 거기는 누가 그럼 같이 가신 분이 계실까요?
우리 동네 친구하고, 친구하고 그때는 내려와서 온산에, 온산에 요게 인자 거 제관 일을 하는데 인제 고기 하다가 고 사장이 인자 어, 그때는 아마 대우에서 아마, 대우건설에서 그거를 뗐는 거 같애요. 대우에서 떼 가지고 우리보고 갈래 이라더라고. 근데 그 사장이 그때 동네 형님이 인자 거기 인자 부장이 있었거든. 그 업체에. 부장이 있었는데, 어, 거 소개로 우리 친구하고 내하고 거기 취직을 했지. 취직을 해가 거가대교 공사가 있으니까 가자. 그 일하는 와중에 그래 인자 갈 사람들 다 모집해서 인자 내려갔죠. 내나 이런 터널. 이런 터널을 우리가 직접 음, 샵(실내)에서, 우리가 안에 들어가는 내장품 이런 거를, 철 구조물 같은 거를 안에서 이렇게 탁 만들어 주면 인자 바깥에 가면 이런 터널을 조립을 하거든요. 그럼 이런 터널을 조립해서 거기서 인자 공구리(콘크리트)를 친다고 공구리를 치고 인자 고기를 딱 막고 이래가 뭐 바다로 끌고 가도 안 가라 앉대. 희한하죠?

신리마을 앞바다에 정박중인 낚시배들.
신리마을 앞바다에 정박중인 낚시배들.

- 고기잡이 어업

그럼 고기잡이하던 이야기를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고기잡이는, (웃음) 고기잡이는 인자 내가 뭐뭐 경험이 없으니까, 인자 우리는 배 허가 자체가 자망(刺網)이었어, 자망, 자망은 그물로. 어, 그물로 고기 잡는 거거든. 어, 자망이 있어 가지고, 내우에 형님이 인자 어선은 전문가거든. 해외도 배 어릴 때 마이 탔고. 그래서 우리 형님하고 처음에 가가 하면서 인자 나는 모르니까, 우리 형님이 요 명칭이 있심더, 길내기, 대왕바우(대왕바위) 이런 데가 있어. 내가 인자 그 자체를 모르니까 우리 형님이 어릴 때부터 배를 탔으니까, 그래 고리 가가지고 하고 뭐, 이래 가지고 고기는 마이 잡았어.
고기를 잡으면 오는 배가, 오는 차들이 있고. 그때는 여기에서 인자 어업을 마이 했으니까, 우리 이 마을에도 보통 한 일고여덟(7~8) 척은 고정적으로 계속 인자 뭐 어업 행위, 활동을, 지금도 뭐 한 네(4) 척 정도는 계속하고 있고, 그 당시에는 한 일고여덟(7~8) 척은 고정적으로 계속 그물 발이 계속 이런 걸 하니까, 물차가 수시로 오지요. 들어올 시간 맞춰가 오고, 또 전문적으로 또 물차하고 이렇게 계약이 터지는 그런 배들도 있고. 

그러면 고기잡이 나가실 때 혹시 우리 바다에 물때가 있잖아요? 그거하고 상관이 있나요?
있죠. 물때가 보통 어… 조수 간만의 차이가 굉장히 심할 때가 보통 뭐 여섯(6), 일곱(7), 여덟(8), 아홉(9) 물까지가 이 물 유동이 엄청 셀 때거든요. 그때 이제 조류가 엄청 세게 간다고. 요 안에는 모르는데, 요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물 조류가 막 강물처럼 이렇게 줄줄 흘러가거든. 이제 그때는 거 그물을 놔도 정확하게 안 들어가고 날라 가뿌리잖아요. 그때는 그물을 잘 안 놓고, 고 이후에 인자 고 때 피해가 인자 그물을 마이 놓고, 또 사리 때라도 고 조류가 또 약한 사리 때가 있고, 또 사리 때가 아이라도 조류가 강한 데가 있고 그렇거든요.

그 혹시 배를 하게 되면 어촌계에 가입을 해야 되죠? 
옛날에는 인자 출항계 자체를 인자 해양경찰이 와가 확인하고 뭐, 우리가 신고를 하고 이랬는데, 어 지금은 인자 시스템이 좋아 좋게 되어있어서 브이 패스(V-Pass)라고 있어요. 브이 패스에 고거만 딱 키면 인자 뭐 해경에서 자동으로 이 배 위치하고 어데 위치가 딱 나오니까 따로 뭐 신고하고 할 필요가 없어요. 근데 낚싯배는, 낚싯배는 거 사람들 사고가 나니까, 사고가 나면 인명피해가 많잖아요. 그러니까 낚싯배는 거 손님들 인적사항을 일일이 다 적어서 인자 자기들한테 문자로 보내주고. 어, 이래 하고 어업 나가는 거는 ,뭐 별 따로 출입항 신고 안 해도 자동으로 인자 브이 패스가 잡히니까.


그 고기잡이하시면은 형님하고 같이 하셨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그 분배를 해야 될 거 아입니까? 한(1) 달 수입이 얼마 되던가요?
거 한(1) 달 수입이 일정하지 않으니까 인자 우리 형님이 나를 마이 생각 해줬지, 우리 형님은 혼자 살고, 그때 다 우리 집에 한집에 같이 살았으니까. 뭐 혼자 살고 우리는 가정도 있고 이라니까, 뭐 수입이 일정하지 않으니까 형님은 따로 뭐 돈 달라 이런 말도 안 하고, 내가 조금 이래 고기 마이 잡았 날 팔아오면 고 때 조금 주고. ...(계속)

-김경완 구술자 1차 1부 구술 내용 (정리 - 경상일보 디지털 뉴스부 배정환 부장.)

※ 본 기사와 관련된 영상은 한국문화원연합회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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