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민의 불역유행(不易流行)(11)]중동전쟁, 판도라 상자 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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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민의 불역유행(不易流行)(11)]중동전쟁, 판도라 상자 열릴 것인가?
  • 경상일보
  • 승인 2024.05.0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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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철민 울산시 국제관계대사 전 주헝가리 포르투갈 대사

지난 35년 동안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보가 심각하게 침해된 사례를 많이 보아왔다. 무엇보다 북한의 핵개발은 국제사회의 핵 비확산 규범과 체계를 철저하게 파괴시킨 사건이다.

2006년 10월 북한은 십수 년 간 집요했던 국제사회의 저지 노력을 비웃듯 핵실험을 했다. 우리를 비롯한 서방그룹은 비교적 짧은 기간 내 중국 및 러시아의 지지를 확보해 모든 유엔 회원국을 구속하는 안보리 결의 1718호를 도출하였다. 그 후 다섯 번이나 더 이어진 후속 핵실험을 막지는 못했지만, 안보리의 대북한 제재의 강도와 수위는 그때마다 강화되었다.

6차 핵실험 때는 레드라인을 한참 넘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만약 한 번 더 감행할 경우 경제봉쇄에 가까운 수위로 압박을 가하겠다는 안보리 내 무언의 약속이 있었던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지난 7년간 핵실험을 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이 가까운 미래에 무모한 모험을 감행한다면, 과연 북한에게 ‘last straw(인내하기 힘든 마지막 부담)’가 될 치명적인 제재결의를 채택할 수 있을까? 어렵다고 본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깊은 수렁에 빠져, 북한과의 군사협력이 필요할 만큼 곤궁에 처해있는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이란도 지구상에 10번째 핵무기 보유국이 되기 위해 핵개발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여 년 전 이미, 미국의 정보당국은 비밀스럽게 진행 중인 이란의 핵무기 및 장거리 미사일 개발 계획을 국제사회와 공유하였고, 그 후 IAEA(국제원자력기구)와 안보리차원에서 저지 노력을 가속해 왔다.

그럼에도 우여곡절 끝에 나온 ‘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도 이행중단 상태에 있어, 핵개발 시한폭탄의 열쇠가 이란의 손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에 더 안타까운 점은 이란의 핵개발 행보가 당장 노골화된다고 해도, 안보리 결의라는 압박수단이 제대로 가동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전격적인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사망자만 3만5000명을 넘고 있다.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남단 라파 지역에 대한 지상전을 개시한다면, 인도적 위기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현재 안보리는 분열되어 ‘가자 지구 내 즉각적인 정전’을 요구하는 안보리결의 2728호의 이행이 무시되고 있고, 팔레스타인의 유엔 회원국 가입 표결도 미국의 거부권으로 부결되었다. 동서 냉전이 붕괴된 1990년부터 21세기 초까지 20여 년 동안, 안보리 전체의 공감과 협력 속에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실현해 왔던 유엔의 역할과 기능이 빛의 속도로 약화되고 있어 안타깝다.

▲  저자 박선호 작가의 삽화.
▲ 저자 박선호 작가의 삽화.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전쟁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이곳저곳에서 조짐이 일고 있는 또 다른 화약고가 터질 경우,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 암담한 미래가 현실화할까 두렵다. 지난 4월10일 밤 이란의 대규모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4월19일 이스라엘은 이란의 이스파한 지역에 소규모 공습을 가하였다.

이란 정부는 사용된 이스라엘의 무기가 ‘어린이 장난감’ 같아서 ‘공격’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축소 평가했다. 이스라엘도 공식입장을 자제한 채, 확전을 방지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란 외교장관은 “이스라엘이 이란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즉각적으로 최대수준의 대응을 하겠지만, 중대공격을 하지 않는 이상 대응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양국이 서로의 본토를 공격한 최초의 사례라는 선례를 남겼기에, 추후 더욱 과감해질 수 있겠다는 위험은 도사리고 있지만, 제5차 중동전쟁이라는 판도라 상자가 열리지 않을 것으로 보여 다행스럽다.

그 이유로 첫째는, 지난 네 번의 전쟁과는 달리 이집트,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등 주변 아랍국들의 군사개입 움직임이 없다.

둘째는, 이란과 이스라엘이 국경을 공유하고 있지 않아, 지상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사실상 어렵다. 이란의 야간 공습에서도 보았듯이 양국의 수도가 2000㎞ 이상 떨어져 있기에 이란으로서는 미사일과 드론의 공격으로는 첨단 아이언 돔 대공 방어망을 분쇄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실감했을 것이다. 더욱이,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국인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면전을 각오하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이스라엘의 절제된 보복 공습에서도 위력을 확인했듯이 자국의 핵시설에 대한 무제한 공격이 있을 경우, 대응 카드가 있을지 고민할 것이다.

셋째는, 최근 하마스 전쟁으로 주춤한 상태이지만, 중동지역 내 경제발전을 위한 각국의 외교적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9월 미국 주도 아브라함 협정으로, UAE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고, 하마스 전쟁으로 중단된 상태이지만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국교 정상화 협의도 언제든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3월 중국 관여로 성사된 사우디와 이란 간 국교 복원도, 수니파와 시아파의 맹주로서 지역 패권을 추구해온 경쟁국간에 손을 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마지막으로, 올해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 정부가 역내 긴장완화를 적극 희망하고 있다는 점이다. 확전은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가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자제 촉구와 이란에 대한 당근과 채찍을 겸한 압박노력은 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류 전체를 위기에 빠트릴 판도라 상자가 쉽게 열리지는 않겠지만, 오늘도 비극적 환경 속에서 불안해 떨고 있을 무고한 민간인들을 구제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단합된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안보리 세번째 진출의 쾌거를 이루었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 그리고 북한의 인권문제에 주안하고 있는 우리로서도, 각별한 외교적 수완과 능력을 발휘해 줄 것을 기대한다.

박철민 울산시 국제관계대사 전 주헝가리 포르투갈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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