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구소멸, 위기는 곧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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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인구소멸, 위기는 곧 기회다
  • 경상일보
  • 승인 2024.05.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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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요즘 한국이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고래’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는 목소리가 들리는 곳이 있다. 적어도 여기에서는 일본과 중국이 새우인 셈이다. 한국인이 스스로 “우리는 새우가 아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한류다. 우리나라의 아이돌 가수들이 중국과 일본의 가장 큰 공연장을 가득 채우고, 동남아를 완전 섭렵한 탓이다. 그리고 본고장인 유럽과 미국을 성큼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한국의 대중문화를 ‘새우’라고 말하지 못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라는 말은 고래들 싸움 때문에 그 사이에 낀 약한 새우만 괜한 피해를 입는다는 의미다. 오랜 시간 한국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이른바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이라는 고래 사이에서 낀 새우 취급을 받아 왔다. 지정학적으로도 혹은 정치적으로도 한국은 늘 새우였고, 어쩌면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며 살았는지 모른다. 오늘도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과연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지리적으로는 어쩔 수 없다 하여도, 그것을 능히 극복하고 대처할 힘을 갖춰야 한다.

작금의 의료 대란 사태의 어리석음도 마찬가지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다. 의사는 국민을 볼모로 집단 사직을 경고하고, 정부는 강경 대응을 천명한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도 조마조마하다. 의료 대란의 위기가 어디까지 커질지 불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정부 관료와 의사들은 어찌어찌하다가 자신들이 살 방법을 능히 찾을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과 그 가족, 그리고 국민이 입게 된다. 그러면 정부와 의사가 고래란 말인가. 의정(醫政) 충돌의 극단에 양보는 일절 없다. 상대방에게 서로 양보를 주장하다가 개울에 빠지고 만 이솝우화의 염소를 기억하는가. “아이고, 이럴 줄 알았으면 양보할걸” 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염소를 보면서, “어리석다”고 생각하진 않았는지. 우리나라는 인구소멸 문제에서 모든 나라를 제쳤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인구소멸이 초래한 현재 위기에 머물지 말고, 우리나라가 이를 기회로 바꿀 최초의 글로벌 테스트베드가 되면 좋겠다. 인구 피라미드에 청년 세대가 계속 공급되는 전제가 깨지게 됐으니 아예 새롭게 축이 변했다. 사회 구조는 물론 부가가치가 생기고 돈을 쓰는 방식조차 완전히 바뀌었다. 그렇다면 ‘인구 감소는 곧 저성장’이라는 공식을 바꿀 기회 요인은 없을까.

작금의 청년층은 ‘저축 제로 세대’다. 저축의 본질은 미래의 편익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청년 세대가 저축하지 않고 현재의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선택은, 생애 전체의 삶에 대한 기대수준 배분과도 관련이 있기에 중요한 시그널이다. 이 시점에서 달라진 경제·산업 지형도에 희망적인 동인으로 70년대생이 등장한다. 인구 통계적으로 현재 45~54세인 70년대생은 특별한 집단이다. 대학 진학률이 처음으로 70%를 넘겼고, 노동차별법 철폐 등이 진전을 이루면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도 활발해졌다. 해외여행 물꼬도 처음 튼 세대이며, 핵가족을 자녀로서 처음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들은 먹고 사는 것에서 벗어나, 잘 사는 것을 고민하는 부모이자 자녀 세대보다 부유한 삶을 누릴 첫 부모 세대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70년대생을 기존 중년 세대와 똑같이 볼 수는 없다. 이들은 구매력이 높지만, 산업과 경제는 아직까지 이들을 주요 소비자층으로 여기지 않아 사각지대다. 향후 900만명에 달하는 70년대생이 테스트베드의 주축이 되어야 한다. 1인당 구매력이 월등히 높은 부유한 세대가 등장했지만, 고학력 성공 모델은 70년대생이 마지막 수혜자가 될 수 있다. 반면, 현 청년층의 경우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문화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꼭 고학력을 기반으로 한 노동이 아니더라도 용역 비용의 부가가치를 높여, 20대의 포기를 사회의 새로운 동력으로 바꾸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한국도 더 이상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가 아닌 고래가 될 수 있다. 우리 앞에는 더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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