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기업 법무 백전불태(百戰不殆)의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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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기업 법무 백전불태(百戰不殆)의 첫 걸음
  • 경상일보
  • 승인 2024.07.0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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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희 미국 변호사

기업이 자본과 기술, 인력을 모아 사업과 경영활동을 하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무수한 법률관계가 발생한다. 각 법률관계는 주로 계약 체결, 채권 행사, 채무 이행, 실정법 준수와 위반에 따른 손익으로 구체화 되는데, 매출과 조직이 커짐에 따라 늘어나는 법무 수요를 회사가 해소하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실무진이 자신의 역량으로 대응하거나, 전담 부서와 인력을 신설·충원하거나, 외주에 의존하는 것이 그것이다.

의외로 많은 기업들이 법무 전담 부서 없이 사업과 지원 부서의 자체 역량으로 법무 현안을 처리한다. 노련한 실무진이 현업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자문 상담을 하다 보면 담당자가 이미 현안에 대한 법적 쟁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 놀랄 때가 있다. 그런데 이는 전적으로 실무진이 가진 가외(加外)의 역량, 그러니까 기술직이나 생산직 같은 자신의 고유 직무에 더해 법무를 수행할 수 있는 담당자 개인의 성실함에 기댄 것이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기보다는 요행에 가깝다. 법무 리스크는 손실로 확정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데, 보통 일당백으로 과중하게 일하기 때문에 아무리 유능한 실무진이라 해도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골든 타임을 지키기 어려워 피해가 현실화한 이후에도 일이 바빴거나 거래 상대방이 나빠서 일어난 일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으며, 추후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세무나 회계, 노무처럼 법무를 외부 로펌에 위임하는 방법 역시 비용을 감수해야 하고 적시성을 양보해야 하며, 무엇보다 업무 노하우가 사내 자원으로 축적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반복되는 현안이 법적 문제임을 알아보았을 때 기업이 할 수 있는 정석적인 대응은 전담 부서와 전문 인력을 조직 내에 마련하는 것이다. 신설되는 법무 조직은 경영진이 요구하는 정도에 따라 타 부서가 의뢰하는 일만 하는 수동적인 지원 인력이 될 수도 있고, 회사가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업무 통제 기구가 될 수도 있다. 인력의 전문성도 경영진이 기대하는 역할의 실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보통 사내 법무 인력은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한 자 또는 국내·해외 변호사들로 구성되는데, 학부 전공지식이나 전문 자격증이 그 사람이 그 일을 하는데 충분한지를 보장해 주지는 않으므로, 무능한 인력을 걸러내지 못한 채 직무가 부여되면, 회사로서는 일하는 조직이 아니라 없느니만 못한 직원들이 일으키는 비효율을 기왕의 리스크 비용에 더해 부담해야 하는 문제를 겪게 된다.

이 문제는 기업이 우수인력을 유치하는 채용의 방법과 채용된 인력의 전문역량 모두에 괴리가 없어야 발생하지 않으나, 인사담당자라면 적재적소에 적임자를 두는 일만큼 회사 일에서 어려운 것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렵사리 경영진을 설득해 기존에 없던 법무 조직을 신설해도, 그 자리를 역량 미달의 직원이 차지하게 되면 기업은 자신이 노출되는 법적 리스크에서 조직과 사업을 지킬 수 없게 된다.

우수한 전문역량과 직무 윤리를 갖춘 인력을 확보했더라도, 성과를 내는 법무 조직이 안착하는 데는 여러 불확실성이 있다. 얼마만큼의 권위와 역할, 책임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면피용 도장이나 찍어주는 부서가 될 수도 있고, 경영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커맨드 센터가 될 수도 있다. 기업 법무는 세의 법칙(Say’s law) 통상 ‘세이의 법칙’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Say는 프랑스의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의 이름이다. 프랑스어이므로 ‘세’라고 표기한다.

적용되는 대표적인 분야로, 일을 잘할수록 초기에는 없던 회사 내의 역할과 책임이 늘어난다. 회사마다 법무 부서를 부르는 이름이 법무팀, 법무감사팀, 법무컴플라이언스팀, 심지어 윤리준법경영팀으로 제각각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성과를 내는 조직에 대한 보상과 인정이 필수적인 것은 법무라 하여 다르지 않다.

기업에 특화된 법무 조직은 전장에 선 장수의 손에 쥐어진 예리한 무기처럼 그 쓸모가 많다. 매출로 실적을 내는 개발이나 영업 부서처럼, 손실을 줄여주고 이익을 지켜주는 유능한 법무 인력이 주는 유익을 실감할 기회가 회사들에게 많이 주어지길 바란다.

이준희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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