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대 총선 이후 정치는 그 어느 때보다 극과 극의 대립으로 야당은 기고만장하고 있고 여당과 대통령은 그 원인조차 모른 채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전체 유권자의 51%의 승자와 49%의 패자에게 국회에서는 110여석과 190여석의 차이로 너무나 비정상적인 의석수를 구성하고 있다. 또한, 승자독식의 행태가 18개 원구성을 통해서 지난 21대 총선보다 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다수당이 된 야당은 국회의장이 당연직 몫이지만 법사위원회와 운영위원회 모두 독식하였다. 11개 주요 상임위원장도 전리품으로 챙겼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견제와 균형이 서로 톱니바퀴 처럼 어우러져 돌아가는 것이 생명이다. 지난날 독재시대에도 그렇지 않았고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잡았을 때도 서로를 배려하는 정치 속에 우리 민주주의는 발전해 왔다. 하지만 이번 22대에서는 법사위와 운영위는 관행상 균형을 위해 나눠 가진다는 것 조차 무시하고 의석 수를 앞세워 독식하였다. 한마디로 쪽수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언젠가는 부메랑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기를 바란다. 언제부터인지 무슨 사안이라도 있으면 특검을 하자고 들고 더 나아가 탄핵이라는 어마무시한 카드를 하루이틀을 멀다하고 꺼내들고 있다. 야당대표를 수사하던 검사가 수년전에 있었던 사건 등, 차마 외국에라도 알려지면 부끄러운 사안도 탄핵의 사유로 들었다. 공수처의 존재가 유명무실해진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를 낳고 일방적인 밀어부치기는 결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반대로 대통령은 국회가 발의하고 상정된 법안을 거부권을 행사하여 민생법안도 처리되지 못하고 있으며 연금개혁도 마냥 미뤄지고 있다.
한편, 떨어진 지지율이 급한 나머지 산자부장관이 발표해도 될 유전 시추건을 조급하게 직접 설명하는 안타까움을 보여주고 있다. 잘되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장되는 일이 정치화되면서 좌우 논리에 의해 성공 가능성이 편에 의해 갈리고 있다.
양 진영 모두 30%의 극단적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우리사회를 주도해서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버드대 교수이자 정치학자인 스티븐 레비즈키의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Tyranny of the Minority)’에서는 극단적 팬덤정치가 낳는 정치 양극화를 통해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경고를 말해주고 있다. 양 극단의 30%를 제외하면 40%라는 합리적 주도세력이 사안과 실정을 판단하여 언제든지 스윙 보터로서 대한민국의 정치를 발전시켜 주길 바란다.
성경에서도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켰고 그중에 안식일에는 먹지도 않고 아픈 사람 치료도 안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나 예수가 와서 보란듯이 밥도 먹고 치료도 하니 유대인들은 예수를 비난하였다. 예수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것이지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하였다. 좌파/우파, 보수/진보를 자신의 신념으로 스스로 가둬두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경종을 울리는 설법으로 현재 우리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 나고 종교나 이념이 있지 이념 안에 자신을 가둬두지 말자는 뜻이다.
이제는 중도가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는 줏대없는 세력이 아니라 코페르니쿠스적 합리적인 주도세력이 되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길 바란다. 우리 지역 정치권도 보수, 진보가 서로 배려하며 견제와 균형을 통해 무엇이 시민을 위한 정치인지 먼저 생각해야 하고, 시민들도 무조건 찍던 당만 찍겠다는 생각보다는 지역 정치권이 무서워할 수 있는 합리적인 주도 세력으로 자리잡아야 하며, 단체장 및 지자체장은 항상 시민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서 가려운 곳이 무엇인지 늘 파악하여 시정에 적극 반영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형석 울산대 건설환경공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