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운전을 하다 정지신호에 걸려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는데, 건물 벽에 걸린 현판에 이렇게 쓰여 있는 걸 봤다. ‘재울 ○○고등학교 동문회’. 그런데 다음 신호등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현판에는 ‘△△고등학교 **회 동창회 사무국’ 이렇게 표기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동창(同窓)’과 ‘동문(同門)’은 다른가. 다르다면 이는 각각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동창회와 동문회의 구별에 대해 딱히 정의된 것은 없다. 둘 다 같은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 모임이다. 우리말 사전을 보더라도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동문’은 ‘같은 학교나 같은 스승에게서 배운 사람’이라고 정의되어 있고, ‘동창’은 ‘같은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사이’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이렇다 할 차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
동문(同門)에서 ‘문(門)’은 교문(校門)을 의미하고,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것을 점잖게 일컬어 ‘동문수학(同門修學) 했다’라고 한다. 그래서 동문은 그 학교의 교육철학이나 교육 환경, 문화적 공통성을 공유한다. 그래서 같은 학교를 나왔다면 그냥 “그 사람과 나는 동문”이라고 말하면 된다.
동창(同窓)에는 ‘창문 창(窓)’ 자가 들어 있는데, ‘같은 창문 아래에서 배운’ 즉, 한 교실에서 공부한 같은 기수를 의미한다. 그래서 동창은 주로 학창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고 각별한 친밀감을 형성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같은 학교를 나온 후배가 선배에게 ‘동창’이라고 한다 해서 결례는 아니다. ‘동창’은 동기 간은 물론 선후배 간에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졸업한 기수와 상관없이 같은 학교를 졸업한 사이라면 ‘동창’이란 말도 틀리진 않는다.
여기에서 말하는 ‘문(門)’과 ‘창(窓)’은 실제로 보이는 사물의 형상으로 구분하기보다는 글자가 품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를 들여다보는 것이 좋겠다. 그런 측면에서는 둘의 분명한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또 하나 ‘동기’란 말도 있다. 이는 ‘동기생’의 줄임말로 어떤 기관이나 조직을 같은 시기에 들어간 사이를 뜻한다. 물론 학교도 예외가 아니라서 ‘같은 해에 학교를 같이 다녔거나 졸업한 사람’을 ‘동기’라고 한다. 오늘날에는 그 쓰임이 많이 확대되어 학교뿐 아니라 회사나 군대에도 ‘동기’란 표현을 흔히 쓴다.
그럼 동창회와 동문회를 어떻게 구별하는 게 좋을까. 모교의 소재지가 아닌 타지라면 졸업생의 인원이 적다 보니 회기별 동창회의 연합체가 아닌, 졸업생 개인으로 참석하는 수가 많다. 이럴 땐 동창회보다는 동문들의 개인별 모임, 즉 ‘동문회’라고 하는 것이 어울린다. 그러나 모교가 소재하고 있는 곳이라면 거의 회기별 동창회가 있을 것이므로 회기별 동창회의 집합체, ‘○○학교 총동창회’가 되는 것이다.
같은 해 같은 학교를 나온 동기를 말할 땐 ‘동기 동창’ 또는 ‘동창’이라고 한다. 제41회, 제42회, 제43회, 이렇게 회기별 동창회가 조직되고, 여러 기수 동창회의 집합체가 총동창회로 운영하는 것이다.
다만 대학의 경우 ‘동창’의 의미가 좀 애매해 통상 ‘동문’을 흔히 쓴다. 나이, 입학년도, 졸업년도가 초중고등학교와는 달리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늦깎이 입학에다 중도에 휴학을 했다 다시 다니거나 편입을 하는 수도 있고, 외부 사회와의 관계가 혼재되어 상하관계가 애매할 수도 있다. 이렇듯 일관성을 적용하기가 어려운 까닭에 같은 대학교에서 공부한 사람들을 ‘동문’으로 통칭한다.
학교를 졸업하면 좋든 싫든 모교의 동문이 된다. 지리적 위치와 역사, 교육방식 외에도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같은 교문을 드나들며 정을 붙이고 같은 스승에게서 수학했으며 비슷한 고민과 희로애락을 공유한 사람들이다. 누구든 동문을 사랑하고 모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종희 울산공업고등학교 총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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