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보수는 안보에 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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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보수는 안보에 강한가?
  • 경상일보
  • 승인 2024.07.1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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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배 전 울산문화재단 대표

안보는 무겁고 두려운 주제다. 그래서인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안보문제는 상대를 공격하거나 자신을 방어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물론 어떤 정치세력이든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이런저런 사안을 이용할 수 있고 안보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안보의 내용이 진실과 한참 거리가 있고, 국민을 기만하며, 정파적 이익만 도모하려는 술수에 가깝다면 그냥 넘길 일은 아니다.

그런데 ‘검찰 독재’ ‘특검’ ‘탄핵’ ‘여의도 독재’ 등 살벌한 말들이 일상처럼 된 이래 안보문제는 뒷전으로 밀린 듯하다. 보수가 진보를 공격할 때는 늘 ‘보수는 안보에 강하다’라며 한미동맹과 대북강경을 내세웠다. 요즘은 정부와 보수가 오히려 안보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말이 먹히는 분위기다. 북의 위협이 국내정치의 수단으로서 과거처럼 약발이 서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다.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고 진실이 거짓으로 낙인 찍히는 작금의 세태를 보면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보수가 안보에 강하다는 주장은 단지 국민의 정서를 자극하는 구호이자 프레임이었을 뿐 사실과 다르지 않았을까?

보수에게 박정희는 안보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황교안 대표가 “박정희를 부정하는 사람은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그런 믿음은 자연스럽게 역대 보수 정부에게도 적용되었다. 하지만 실은 안보 면에서 자랑할만한 보수 정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친미반북’이라는 보수의 기준에서 볼 때 더욱 그렇다.

박정희는 예외였을까? 동북아 안보구조의 격변기인 1970년대 초 한미관계에 한정하여 두 가지 사례로 살펴보자. 하나는 1971년 12월6일 국가비상사태의 선포이다. 박정희는 선포 이유를 ‘북괴의 적화 통일 야욕’ 때문이라 했다. ‘임박한 위협은 없다’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려는 것’이라 얼버무렸다.

미국은 당시 상황을 전혀 다르게 평가했다. 한반도 주변의 어느 강대국도 북한의 전면 공격을 공감하거나 돕지 않을 것이며, 북한은 한국을 공격할 의도가 없으며, 한국은 미국에 의존하는 관계에서 동반자 관계로 성장했으며, 박정희는 강력한 통치력으로 사회 안정을 유지하고 있고, 남북대화는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방위공약이 확고함을 여러 경로를 통해 심지어 닉슨 대통령의 서신을 통해 거듭 보장해주었다. 미국은 한국이 미국을 불편하게 만들면서까지 긴장을 조성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정치적 퇴행’으로 규정했다.

다른 하나는 1972년 10월17일 유신의 공표이다. 박정희는 유신의 국제적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긴장 완화라는 이름 밑에 이른바 열강들이 제3국이나 중소 국가들을 희생의 제물로 삼는 일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누구도 이 지역에서 다시는 전쟁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미국은 박정희의 주장을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보았다. 더구나 유신 발표 23시간 전에야 김종필 총리는 하비브 대사에게 유신 계획을 통보했다. 불과 3개월 전 7·4 남북공동선언을 격하게 칭찬한 미국은 졸지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꼴이 되었다. 김종필은 유신의 목적을 ‘견고하고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급변하는 주변 상황’과 ‘북한과의 대화’에 대응하려면 ‘현재 선거제도의 약점’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박정희의 행동을 ‘불필요하며 장기적으로 어리석은 짓’이라 판단했다. 미국은 유신 이전 상태로 되돌리려면 군대를 동원하는 ‘직접적이고 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국민이 더는 참지 못하고 폭발할 때까지 억압했던 이승만을 들먹이며 ‘역사가 되풀이될까 두렵다’라는 경고를 날리기도 했다. 미국의 불신은 깊어졌고 박정희는 ‘죽거나 군사 쿠데타에 의해서만 제거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까지 하였다.

박정희는 일반적 믿음과 달리 안보 불안 초대자였다. 그래서 보수가 그로부터 안보의 권위를 찾는 것은 억지스럽다. 보수가 진정으로 안보를 걱정하고 그것을 정치적 무기로 이용하고 싶다면, ‘역대 보수 정부가 안보에 약하지 않았는지?’ 정직하게 돌아봐야 한다. 그것이 보수가 시대를 좇아 거듭나는 하나의 길이기 때문이다.

김정배 전 울산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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