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마모토(熊本)에 가면 울산마을이 있다. 2010년 울산과 우호협력도시 협약을 맺은 구마모토에는 일본의 3대 명성으로 알려진 구마모토성이 있다.
성을 축성한 사람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다. 가토는 임진왜란 때 1진으로 상륙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에 이어, 2진으로 상륙해 함경도에서 임해군과 순화군을 포로로 잡기도 했다. 그는 퇴각하면서 울산에서 서생포 왜성을 축성하고 이후 정유재란 때는 현재 학성공원 위치의 울산왜성을 축성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영지인 구마모토로 돌아가 울산에서의 축성 경험과 죽음 직전까지 간 전투 경험을 살려 난공불락의 구마모토성을 축성하였다.
성에는 임진왜란 이전의 일본성에서 볼 수 없었던 고려문(高麗門)을 만들었다. 성 아래는 조카마치(城下町)라는 마을도 만들었다. 조카마치의 이름이 울산마을이다. 당시 이곳에는 사무라이와 상인, 장인들이 살았다. 이 조카마치인 울산마을에는 조선(울산)에서 잡아간 포로들을 살게 했다. 포로들 중에서도 우수한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이곳에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울산마을이 신마치(新町)로 바뀌고 고려문은 문지를 알리는 흔적만 남아있다. 울산마을은 없어졌지만 노면 전철 정류장과 버스 정류장은 옛 이름 그대로 蔚山町(울산마치)로 남아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울산이 있다. 이 울산마을 정류장 바로 옆에는 ‘효고야(兵庫屋)’라는 간장 공장이 있다. 이곳은 효고야의 본점으로 건물 정면에는 兵(병-일본 발음 ‘효’)자를 넣어 '효고야'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120여 년 전의 건축물답게 옛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오래된 점포이자 공장이다. 공장으로 이어지는 점포 안으로 들어가면 에도시대부터 사용해 온 간판과 더불어 귀중한 자료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간장공장 이전에 시작한 전당포와 양조장의 장부 등 기록에서부터 현재 간장공장 효고야의 자료들 까지 전시되어있다. 전시품 하나하나가 효고야의 역사로 보기에 충분하다. 간장 된장을 만들 때 사용한 오래된 도구들이랑 많은 상장과 기념품 중에 무엇보다 필자를 반기는 것은 울산에서 온 사진들이다.
벽 한쪽 면에는 文化繼承と 歷史散策(문화계승과 역사산책)이라는 글자와 韓國蔚山市展(한국울산시전)이라 소개되어 있다. 사진은 서생포왜성과 울산왜성 사진이 걸려있고 아래쪽으로는 무지개가 뜬 태화강변 사진과 태화강국가정원 대숲 사진과 울산시가지 사진과 함께 문수경기장 사진도 있다. 설명은 한글로 소개돼 있다. 울산 사람들이 가끔 찾아오는 것과 울산과의 인연을 소중히 하는 사장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와타나베 사장은 회사의 간단한 연혁을 필자에게 소개했다. 그는 1715년 창업 15대째 사장을 맡고 있으며 선조가 효고에서 가토 기요마사를 따라 구마모토에 왔다고 한다. 가토의 부하로 있다가 에도시대 번주가 가토 家에서 호소카와(細川)家로 바뀌면서 무사직을 그만두고 상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 고향의 지명을 넣은 공장이름 효고야로 간장, 된장, 면 종류를 만들었으나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간장과 된장 그리고 몇 종류의 장류만을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된장으로 쌀로 만든 미소와 보리로 만든 미소가 있고, 간장은 매운맛과 단맛의 생선회 간장이 크고 작은 병에 진열되어 있다. 간장병에는 울산이라는 상표가 붙어 있다. 생선회 전용 간장으로 인기 있는 특산품이다.
구마모토 시에는 조선(울산)과 인연이 많은 곳이기 때문에 혹시 간장도 원조와 전래가 울산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아 와타나베 사장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사장은 효고야의 간장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때 울산에서 가져왔다는 것은 들어본적도 없고 상표이름 ‘蔚山’은 울산마치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울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잘라 말했다. 아픈 역사의 현장, 울산마치 정류장과 울산마치에서 만들어진 울산 간장이 지금은 구마모토의 관광지로 관광상품으로 새로운 세기의 대한민국 ‘울산’을 생각나게 하는 곳이 되고 있다.
김청자 울산시 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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