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을 대표하는 꽃 중에서 연은 전통적으로 불교도에게는 신성함의 상징이요 유학자에게는 군자의 표상이었다. 송의 유학자 주돈이(1017~1073)는 ‘애련설(愛蓮說)’에서 “(연은) 진흙에서 나지만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기지만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고 겉은 곧으며, 덩굴이 뻗지 않고 가지도 치지 않으며,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이 서 있어서 멀리서 볼 수 있으나 만질 수는 없다.”고 하여 그 독특한 품성을 지적한 바 있다.
은산(銀蒜)이 발에 드리우고 한낮이 긴데
오사모(烏紗帽)를 반쯤 벗으니 상쾌한 바람이 부네.
벽통배를 건네주어도 오히려 더위가 싫어서
쟁반의 얼음을 깨뜨려 옥 같은 음료를 마시네.
銀蒜垂簾白日長(은산수렴백일장)
烏紗半岸灑風(오사반안쇄풍량)
碧筩傳酒猶嫌熱(벽용전주유혐열)
敲破盤氷嚼玉漿(고파반빙작옥장)
이 시는 고려 시인 이규보(1168~1241)의 <여름날(夏日)>로, ‘다른 사람 대신하여 침실 병풍에 쓴 4계절 노래(代人書寢屛四時詞)’의 두 번째 작품이다. 마늘 모양의 은제 갈퀴가 발에 드리워진 긴 한낮에 오사모를 반쯤 벗으니 상쾌한 바람이 부는 듯하다고 한 뒤, 벽통배를 건네주어도 오히려 더위가 싫어서 쟁반의 얼음을 녹인 음료를 마신다고 하였다.
벽통배는 연잎 술잔이다. 삼국시대 위(魏)의 정각(鄭慤)은 삼복 철이면 사군림에서 피서하면서 벼루 통 위에 얹어놓은 연잎에 술 3되를 담고 잎과 줄기 사이에 비녀로 구멍을 뚫어 줄기 끝을 빨아 술을 마셨다. 줄기가 코끼리 코처럼 구부려졌으므로 상비음(象鼻飮)이라고도 하였다. 이후 중국과 우리나라의 선비들은 이런 풍류를 즐겼으니 이번 여름에 우리도 한 번 벽통배·벽통음 시도해 볼 만하다.
성범중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명예교수·<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