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 현철(이하 현철)씨가 지난 7월15일 82세로 생을 마감했다. ‘현철’하면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와 대중적인 친화력이 먼저 떠오른다. 필자와의 만남은 30여 년 전 일이다. 울산광역시 승격 이전 ‘하나 된 경남 세계로 미래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996년 5월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울산에서 제35회 경상남도 체육대회가 열렸다. 그 당시 필자는 개막식 축하공연 담당자였다. 그 시기에 국내 최정상급 가수였던 현철, 윤수일, 주현미, 한혜진 등 4명을 울산예총을 통해 섭외했고 이들은 개막식 공연행사 때 마지막을 장식했다.
지금이야 울산종합운동장으로 변해서 번듯하지만, 그 당시 울산공설운동장은 모든 시설 면에서 열악했다. 개막식 당일 공설운동장 사무실에서 그들을 맞이했다. 오늘은 현철 얘기만을 하고자 한다. 처음 보는 순간 현철은 가수보다는 코미디언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네 형들처럼 전혀 부담감과 어색함이 없었다.
두리번거리기에 화장실로 안내, 나란히 소변을 같이 보게 되었다. 칸막이가 된 현대식이 아니었고 길게 이어진 콘크리트로 된 트인 소변기였다. 뜬금없이 “뭘 봐요” “안 보이는 대요” “내 코 커 봤자 별 볼일 없대이”라는 말에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현철은 부친의 사업 실패로 고등학교 때부터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만 했고, 가수생활도 18년간 긴 무명생활을 해야만 했다. 어려운 시기 물 한 그릇 떠놓고 결혼식을 올렸고, 열두 살 아래 아내를 “딸처럼 키웠다”며 특유의 농담으로 얘기했다. 열 번도 더 전셋집으로 전전긍긍해야만 했고 생활은 거의 아내의 몫이었다고. 고생만 하는 아내를 위하여 직접 작곡한 ‘앉으나 서나 당신생각’ 이 한곡으로 현철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고 했다.
현철이가 뜨게 된 계기는 1987년 동아건설이 시행한 리비아 대수로 공사 현장에서 ‘가요무대’ 위문공연 때 ‘앉으나 서나 당신생각’을 불러 해외 근로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 후 긴 무명생활을 청산하고 보란 듯 1988년에 KBS 10대 가수상을 받은데 이어 89년과 90년 연이어 가수왕으로 등극, 스타가 되었다. 가수왕 발표 때 한 달 전에 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울음바다가 된 시상식 장면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현철은 동네 이웃들과 대중목욕탕에 자주 다녔고, 퇴근길에는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는 등 새마을지도자 같은 영락없는 동네 주민이었다. 필자가 이제껏 본 성공한 분들의 공통 분모는 지극한 효성을 바탕으로 엄청난 고생과 인내가 뒤 따라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봐왔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듯 고생한 만큼 성공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방송에서 현철의 토크쇼를 보면서 행복의 진가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스타였다. 1980·90년대 ‘사랑은 나비 인가봐’ ‘내 마음 별과 같이’ ‘봉선화 연정’ ‘아미새’ ‘들국화 여인’ ‘남자의 눈물’ 등 수 많은 히트곡을 남겨 대중들로부터 오랫동안 사랑을 받을 것 같다.
대기만성에 애주가였고 부산 사나이 현철은 인간적인 삶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싫다 싫어 꿈도 사랑도, 싫다 싫어 생각을 말자”는 노랫말 가사들을 음미해 보면 돈도 명예도 죽음 앞엔 한낱 안타까운 사연들과 숙연한 마음뿐이다.
얼마 전 80대 후반 친했던 지인을 만났다. 가깝게 지냈던 분들과 밥 한 끼 먹는 게 일과라고 했다. 순간 아! 죽음을 준비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고, 공감하는 바가 컸었다.
현철(강상수)형!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저승에서도 이승처럼, 극락왕생하기를 빕니다.
강걸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