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월요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연방대법관의 임기를 종신에서 18년으로 제한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연방대법원 개혁안을 발표했다. 발의의 표면적인 이유로는, 주요 민주공화제 국가들 가운데 대법관의 임기를 종신직으로 운영하는 예는 미국이 유일하다는 것과, 연혁적으로 미국 의회는 75년 전 행정부의 장인 대통령직에 대한 임기 제한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는데, 최고 사법기구인 연방대법관에 대하여 예외를 둘 이유가 없다는 것을 들었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대법원장 1인과 대법관 8인 총 9인으로 구성되며, 연방대법관은 상원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지명한다. 발의된 임기 제한이 제도화될 경우, 연방대법원 구성에는 일정 주기별로 교체가 이루어져 교체 시점의 무작위성이 줄어들고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며, 어느 한 대통령의 지명권 행사가 수 세대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게 된다. 현 연방대법관들을 대상으로 이 제도를 적용할 경우 대통령은 매 2년 마다 연방대법관을 교체하게 되며, 이는 현재 6명의 보수 성향, 3명의 진보 성향 연방대법관의 비율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다. 참고로 1789년 연방대법원이 설립된 이래, 대법관 중 49명이 재임 중 사망했고, 56명이 자진 사임으로 임기를 마쳤으며, 2명이 탄핵되었다. 이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약 16년이었다.
이번 개혁안의 두 번째 골자는 전직 대통령의 재임 중 범죄에 대한 형사 면책을 금지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이다. 지난 1일, 연방대법원은 4월30일자 경상시론 지면을 빌어 설명한 트럼프 대선 후보를 둘러싼 여섯 가지 민·형사 사건 가운데 하나인 대선 불복 관련 연방 범죄 혐의 기소 사건에 대해, 대통령 재임 중 공식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퇴임 뒤에도 면책 특권을 누린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는데, 두 번째 개혁안은 이러한 연방대법원 판례가 민주적 정당성의 범위를 벗어난 특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것으로서 헌법 정신에 위배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개혁안의 마지막 내용은 연방대법원을 법적으로 구속하는 윤리강령의 제정이다. 관련 규범에 의할 경우 연방대법관은 수령한 선물을 공개해야 하고, 대외적 정치 활동을 자제해야 하며, 자신과 배우자의 이해와 상충하는 사건을 기피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이번 개혁안들의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다. 개혁안 가운데에는 대법관 임기제와 같이 다수 여론이 지지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으나, 3대 개혁안 모두 실제 법제화되기 위해서는 미국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공화당이 총 435석 중 218석으로 다수를 점한 하원과 무소속 4석을 포함해 민주당이 다수당의 지위를 가까스로 갖는 상원 모두에서 일사불란한 의결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또한 가장 최근의 개헌인 27차 수정헌법이 의회 인준을 받은 때가 32년 전일 만큼 오래 되었으며, 무엇보다 대통령 선거일이 100일을 채 남겨두지 않은 현 시점에서 관련 입법과 개헌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모든 사회적 합의와 절차를 완결하는 것은 어떤 계산에 의하더라도 무리이다. 미국 민주당조차 이번 개혁안의 실익을 제도화 자체가 아닌 민주당 지지 성향의 유권자 결집에 있다고 이해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백악관은 이번 개혁안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제한하고, 연방대법원에 대한 미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며, 민주주의의 보루를 강화함으로써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으며(no one is above the law), 미국은 국민이 통치함(in America, the people rule)을 분명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 정치적 배경과 진의가 무엇이든, 이 두 문장은 나라를 초월하여 각각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가장 간결한 표현들로 통용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다른 어느 때보다 극단주의(extremism)가 권력 쟁취에 유리한 수단임이 확인되고 있는 요즘 이 익숙하고 오래된 개념들이 우리에게도 새삼 주목되고 환기되길 바란다.
이준희 미국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