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新 포도나무 아래서-장생포문화창고 3돌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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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新 포도나무 아래서-장생포문화창고 3돌에 부쳐
  • 경상일보
  • 승인 2024.08.0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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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승태 고래문화재단 전시기획팀장 (학예연구사)

울산 남구의 복합문화공간 장생포문화창고가 개관한 지 만 3년이 됐다. 오랫동안 폐산업시설로 방치되던 건물을 매입하고 예술가와 시민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여 복합문화공간으로 2021년 6월 개관했다. 작년 한해만 17만명이 넘었고, 그간 다녀간 관람객은 총 43만명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더불어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역의 문화 매력을 찾아내고 지역문화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국민발굴단의 추천을 받아 선정한 2023년 ‘로컬100’에 울산에서 유일하게 지관서가와 장생포문화창고가 선정되었고, 행정안전부의 행정자치대상 중 문화예술 분야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장생포문화창고는 울산에서 성공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관람객 증가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이 이곳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시민은 여기서 무엇을 얻고 평가하였을까. 장생포문화창고는 공업도시 울산의 은유로 보인다. 오랫동안 방치된 산업시설이었던 폐건물을 문화가 풍성한 공간으로 탈바꿈하였기에 시민의 가슴에 더 크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산업시설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네’ ‘생각보다 잘해놨네’ ‘콘텐츠 수준도 높네’ 라는 반응이다. 울산도 이렇게 바뀔 수 있다는 마음과 부족한 문화시설의 대안이라고 생각하였기에 시민들은 각별한 애정을 가졌을 것이다.

나무를 심는 일은 종종 문화를 가꾸는 일로 비유되곤 한다. 문화 불모지 울산에 장생포문화창고는 나무를 심은 것이고, 관람객의 격려는 나무에 물을 주는 거와 같다.

시민의 격려는 울산의 미래 세대가 풍성한 문화를 누리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장생포문화창고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는 그렇게 받아들인다. 폐건물의 과감한 매입과 문화공간 운영을 결정하고, 시민과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합의해 공간을 운영하는 일련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행정의 강한 리더십 덕분이다.

장생포문화창고를 보면 장 지오노의 ‘나무 심은 사람’이라는 유명 실화 소설이 떠오른다. 소설은 황무지를 거대한 숲으로 가꾼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양치기의 삶을 다룬다. 숯 만드는 일로 경쟁하던 사람이 떠난 산골 마을에 혼자 남은 노인이 양치기 대신 나무를 심는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숲은 풍성해지고 마른 우물엔 다시 물이 나오고 시냇물이 흐른다. 떠났던 사람들은 어느새 돌아와 숲의 풍요로움을 즐긴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오직 공기와 물, 그리고 땅과 나무를 위해 끊임없이 헌신하는 인간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이후 캠페인이 벌어졌고 사람들은 나무를 심었다. 장생포문화창고를 위해 노력한 모두는 내일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다.

조급한 마음으로는 나무를 심지 못한다. 열매만 먹으려는 사람은 나무를 심지 못한다. 경쟁하는 지방정부는 신 포도나무 아래 여우와 같다. 남의 포도는 크고 먹음직스럽다. 열심히 벤치마킹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민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아는 것이다. 시대의 조류를 무시할 수는 없다. 누구를 위해 나무를 심고 어떤 나무를 심을 것인가. 장생포문화창고 운영자인 나의 미션은 어린이와 여성을 위한 콘텐츠 기획이다. 고객과 운영 방향성이 정해졌다. 이제 남은 건 꾸준한 지원과 기획자의 전문성을 믿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문화가 성숙하지 않은 사회는 이익 다툼으로 경쟁만 남는다. 남이 가꾼 열매를 탐할 뿐 가꾸지 않는다. 문화 예산으로 하드웨어를 짓기는 쉽지만, 뚝심으로 운영하는 건 쉽지 않다. 투자 대비 성과가 금방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재정이 열악한 지방정부는 조급함이 더 심하다. 창작은 매번 새로운 것을 요구하지만 향유 하는 문화는 새로운 것을 요구하기보다 기존에 살아남은 문화기획을 잘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문화의 속성은 숙성되는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장생포문화창고를 운영함에 있어 이익을 말하기 전에 시민 삶의 만족도를 고민해야 한다. 숲은 시민 저마다의 삶이 더 풍부해지도록 이끈다. 익으면 포도는 자연스레 떨어진다. 울산 남구는 나무를 심었다. 몇 십 년 뒤 싱그럽게 익을 포도를 상상해 보며, 달콤한 열매가 풍성한 장생포문화창고를 그려본다.

한승태 고래문화재단 전시기획팀장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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