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두쪽 난’ 광복절과 ‘진짜’ 보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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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두쪽 난’ 광복절과 ‘진짜’ 보수의 미래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4.08.2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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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배 전 울산문화재단 대표
역사문제로 온 나라가 들끓더니 결국 두쪽 난 광복절이 되고 말았다. 정부와 광복회가 광복절 경축식을 따로 열고, 야당과 국회의장이 정부 주최 행사에 불참한 것이다. 발단은 신임 독립기념관장의 적격성 여부였다. 광복회와 독립운동 유관단체, 야당, 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시민이 ‘뉴라이트’로 의심되는 관장의 임명 취소를 요구하고, 이를 용산이 거부하면서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신임 관장은 자신이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그것의 진위를 떠나 뉴라이트의 ‘역사기관 25개 요직 장악’이라는 기사를 보면 정권의 정체성 자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별 연고도 없는 자를 무리하게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한 것이 모종의 기획 - 건국절 제정과 친일파 신원(伸)-에 따른 것이 아닌지 궁금해들 한다.

건국절 소란은 2006년 7월31일 동아일보의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이영훈 교수의 글에서 시작되었다. 글 자체는 사실관계 오류와 횡설수설이 심하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는 친일파 재건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셈이다. 최근의 ‘반일 종족주의’ ‘건국전쟁’ ‘테러리스트 김구’와 역사기관 점령에 이은 독립기념관장 접수는 그들의 목표가 가시권에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낯뜨거운 사태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익히 경험하고 있듯이 우리 내부의 주장들은 파당적 이해로 얽혀 있어서 꽤 타당한 설명일지라도 수용되기 어렵다. 그래서 타자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승인의 주체인 미국과 유엔의 입장과 시각을 살펴보는 것도 쟁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싶다.

1945년 8월15일 해방 이후 3년간 남북에 군정이 시행되었다. 신탁통치를 협의하기 위해 설치된 미소공위가 결렬되자 미국은 한국문제를 유엔에 이관했다. 유엔은 1947년 11월14일 결의안을 통해 선거를 시행해 국회를 구성하고 정부(national government)를 수립하도록 권고했다. 선거감시를 위해 구성된 한국임시위원단이 소련의 거부로 북한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2월26일 유엔소총회는 접근 가능한 지역의 선거를 결정했다. 5월10일 남한에서만 선거가 실시되고, 7월17일 제헌의회는 헌법을 공표하고, 8월15일 ‘정부’ 수립이 선포되었다. 1948년 12월12일 유엔은 이 ‘정부’를 승인했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신정부(New Government)’라는 용어를 썼다. 이때 신(new)은 ‘임시(provisional)’를 전제한 용어다. 미국은 2차 대전 말 구미위원부의 이승만이 집요하게 요구한 임시정부 ‘승인’과 ‘참전’을 정책상 승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과 임시정부의 처지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주도한 미국은 “미국이 타국 정부를 승인해온 전통에 따라” 8월15일부터 12월12일까지는 대한민국 정부를 ‘사실상(de facto)’ 정부로만 인정하고 대사가 아닌 특별대표를 파견했다. 그리고 유엔 승인 이후 1949년 1월1일 ‘법적(de jure)’ 정부로 인정했다. 미국은 1948년 8월15일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를 유엔이 승인함으로써 대한민국이 마침내 독립국(international person)이 된 것으로 본 것이다.

요컨대 1948년 8월15일 수립된 것은 대한민국의 ‘신정부’지 대한민국이 아니다. 신정부는 1919년 건립된 대한민국과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했고, 1948년 12월12일 유엔은 그 신정부를 대한민국의 ‘공식’ 정부로 승인했다. 그것은 1919년의 대한민국이 유엔과 미국에 의해 자주독립국으로 인정되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1948년은 대한민국 30년이 되는 것이다.

뉴라이트의 등장 이래 불필요한 역사논쟁이 이어졌다. 그들은 어설픈 역사이해와 황당한 국가이론을 앞세워 가짜 역사를 제작·살포하면서 그것을 무슨 담론 인양 떠든다. 망령된 분열주의적 책동이다. 그 배후에 반민족적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까 걱정들이다. 다만 이번 사태로 소득이 있다면, 보수의 탈을 쓴 ‘토착 왜구’의 커밍아웃과 ‘진짜’ 보수의 각성이다. 이를 계기로 ‘건강한’ 보수의 재편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김정배 전 울산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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