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파리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은 당초 5개 목표를 훨씬 넘어선 13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중 ‘총·칼·활’로 합작한 금메달이 무려 10개다. 최고의 성적을 낸 이들 종목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든든한 뒷배, 즉 대기업 회장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 종목 금메달 5개를 석권한 양궁에는 현대차그룹이,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금·은메달 각 3개씩의 사격에는 한화그룹이, 그리고 샤브르 종목에서 금메달 2개로 첫 단추를 잘 채운 펜싱에는 SK그룹이 그 주인공이다.
필자는 여기서 ‘기업 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이라는 사실을 또 한 번 목도했다.
13번째 금메달로 태권도 종주국의 위상을 되찾은 김유진도 빼놓을 수 없다. 문경에서 2000년에 태어난 김유진은 울산광역시체육회 소속이다. 김유진은 ‘도장 깨기’ 하듯 상위 랭커들을 차례로 물리쳤다. 16강에서 5위 튀르키예 선수를, 8강에선 4위 캐나다 선수를 모두 2-0으로 눌렀다. 준결승에선 세계 1위 중국 선수를 2-1로 꺾었다. 올림픽 전 세계 랭킹이 24위에 불과했던 김유진은 결승전에서 세계 2위인 이란 선수를 2-0으로 완파하고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김유진은 “세계 랭킹은 숫자에 불과하다.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라면서, 후배들에게 “얘들아, 올림픽 별거 아니야. 너희도 할 수 있어”라며 활짝 웃었다.
최소 인원으로 최대 성과를 거둔 파리올림픽의 교훈처럼, ‘위기는 곧 기회!’라고 외쳐야 할 분야가 있다. 우리나라 및 울산의 최대 주력산업 중 하나인 석유화학산업이다. 최근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전 세계의 경제성장률 둔화 및 건축·전자 등 주요 산업의 수요 저하에 따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각국의 환경규제 및 탄소배출 제한 정책으로 경쟁력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그동안 ‘주머니 속 칼’ 정도로 여겨지던 중국과 중동이 본색을 드러내면서 부터다.
우선, 우리나라의 최대 수요처는 중국이다. 그런데 중국의 자체 생산력이 크게 향상돼 국내 수출량이 감소하면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이 내수시장에서 남은 물량을 저가에 쏟아내면서 국내 업체들이 그로기 상태로 내몰렸다. 이대로면 한국 석유화학업계가 공멸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최근 중국은 탈석유화, 수소와 암모니아 활용 공법 기술개발 및 플랜트 구축이 활발해지고 있다.
중국 북부 지역은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여건이 좋으며,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하여 수소를 만드는 그린수소의 잠재력도 크다.
또 중동은 어떤가. 이전에는 원유만 내다 팔던 중동 국가들이 잇달아 석유화학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현재 중동에서 짓고 있는 정유·석유화학 통합 공장은 8개로 투자 금액만 무려 123조원에 달한다. 원유를 뽑아낸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만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업체들이 원가 경쟁력 측면에서 이길 재간이 없다. 더군다나 오일피크 현실화에 따른 중동의 추가 증설 리스크로 인해 업황 또한 단기간 내에 회복되기 쉽지 않다.
그러면 울산 석유화학산업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가. 먼저, 울산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산·학·연·관으로 구성된 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 특히, 공무원의 적극행정이 수반된 공장장협의회 구성 및 역할의 재정립이다. 정부 차원에서 총력 지원에 나섰기 때문이다. 현역 공장장들이 뒷짐 지고 바라볼 때가 아니다. 또한, 정부와 지자체가 협력해 석유화학산업 발전에 저해되는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
통합 파이프랙 구축 사업의 해결방안이 없는지 머리를 맞대고 협의하자. 해외 선진 사례 등을 분석해 실질적으로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위기극복 방안을 마련하자.
울산 석유화학산업은 세계 최고의 플랜트 운영 기술의 강점을 디지털 기술과 접목하여 한층 더 원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강점 분야와 고부가가치 소재 분야에 더욱 집중하면서 사업의 과감한 매수 및 합병까지 모색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울산 석유화학산업의 지속가능한 경쟁력강화 방안 및 글로벌 환경규제 대응전략을 수립하여 재도약을 위한 디딤돌을 구축하자.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명예연구원 RUPI사업단장·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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