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2일 한국동서발전 대강당에서는 ‘일단 해보는 합창단’이라는 명칭의 합창단 공연이 있었다. 동서발전 내 자칭 음치·박치들이 모였다는 합창단의 첫 곡 ‘바람의 노래’는 그들의 음감 수준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곡의 상당 부분을 솔로 릴레이로 편성해 단원 면면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줬고, 상기된 합창단원들은 불안한 음정과 대신에 놀라운 집중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음치·박치 대환영’이라는 말로 모집한 합창단에게 주어졌던 시간은 3주. 도전에 동참한 15명은 세곡을 훌륭하게 완주했다.
동서발전은 지난주(19~22일) ‘실패주간’을 열었다. ‘일단 해보는 합창단’을 포함해 자잘한 일상 속 실패사례를 담은 사진전이 열렸고, 실패하기 십상인 인형뽑기, 못박기 같은 몇 가지 챌린지가 진행됐다. 또 필자를 포함한 경영진을 곤란한 질문으로 나락에 빠뜨리는 ‘나락퀴즈쇼’를 일주일 내내 1층 로비와 엘리베이터 내 화면 등을 통해 틀었고, 수영대회에 참가했는데 혼자만 다이빙 출발이 아니라 물속에서 출발한 경험담 등 자신의 인생 실패담을 풀어놓는 ‘나락토크콘서트’도 있었다.
사업개발 과정에서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던 사업을 끄집어내어 그 원인을 분석하는 ‘실패토론회’도 열렸다. 처음에는 담당자를 탓하는 분위기가 되지 않기 위해 말을 아끼고,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흔한 말, 진부한 의견들이 나왔다. 하지만 사업개발 당시 담당자들의 생생한 패착 분석과 반성이 이어지자 이야기는 무르익었다. 조직에서 용인 가능한 ‘바람직한 실패’를 정의하고, 실패 노하우를 자산화해 어떻게 제대로 활용할 것인지를 숙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두려움 없는 조직>의 저자 에이미 애드먼슨(Amy Admondson) 하버드대 교수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거나 응징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신의 실수와 우려를 기꺼이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심리적 안전감’이라고 설명한다. 심리적 안전감이 없으면 구성원들은 본능적으로 실패를 피하고자 도전을 회피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조직은 성공할 수가 없다. 실수와 실패가 용인되는 조직, 그러한 조직만이 성공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얻을 수 있다. 동서발전이 사소한 개인적 실수부터 조직 차원의 도전에서 실패한 사례를 드러내고, 경영진이 망가지는 모습이나 음치라도 무대에 당당히 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결국, 도전에 두려움이 없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필자는 실수를 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라는 말을 자주한다.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은 신이거나 기계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실수를 한다. 판단의 실수, 행동에서의 실수 등 다양한 실수들이 있어도 일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실수가 중첩되거나 중요한 실수의 경우 당연히 그 사업 자체가 실패할 수도 있다. 따라서 실패도 인간사의 다반사다.
하버드경영대학원 시카 고쉬(Shikhar Ghosh) 교수에 따르면 벤처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가운데 매출목표를 달성하는 기업은 5%, 투자수익을 달성하는 기업은 20% 정도라고 한다. 2015년 우리나라의 전체 벤처기업 대비 IPO(기업공개) 비율은 0.2%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벤처기업이라는 것은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더 크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성공은 결코 있을 수도 없고, 사회의 발전 또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우수한 인재와 특유의 근면 성실로 정말 기적 같은 성취를 이뤄냈다. 6·25 직후 선진국들의 원조가 아니면 존속하기조차 힘들었던 세계 최빈국에서 이제 명실상부한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벤치마킹할 선진국이 있었고, 그들이 이뤄낸 길을 더 빨리, 더 잘 해내고자 하는 열의와 우수한 머리가 있었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따라 했던 선진국들과 같은 라인에 서 있다. 그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따라갈 발자취 같은 건 없다. 이제는 추적자(Fast follower)가 아니라 개척자(First mover)가 돼야 하는 것이다. 개척자에게 필요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보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다.
김영문 한국동서발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