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영성은 울산의 대표 역사·문화 자원이다. 축성 607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 보존 가치 또한 높은 문화 유산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병영성을 터전으로 삼아 삶을 살아가는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는 병영성이 말 그대로 ‘애물단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지난 1987년 병영성이 사적 제302호로 지정되며, 공식적인 국가 문화 유산이 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무려 37년의 세월 동안 재산권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보호받지도 못해 왔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이자 자본주의 이념을 따르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주민 개인의 재산권은 법적으로 반드시 보장돼야 할 권리다.
그러나 이러한 재산권이 문화재 보존과 맞물리면서 철저히 외면받아 온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역사·문화적 측면에서 문화 유산을 지키고 가꾸는 일은 그 무엇보다 우선 순위에 둬야 할 중요한 책무지만 정작 주민들이 일상에서 누려야 할 삶과 일상을 침해하면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병영성을 중심으로 200m 이내는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으로 건축 규제 대상이다. 이 때문에 재개발이나 재건축은 꿈도 꿀 수 없다. 주민들은 30~40년 이상 노후된 주거지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집을 팔 수도 고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병영성과 인접한 동도빌라와 병영연립은 1981년과 1980년 각각 사용 승인을 받은 40년을 훌쩍 넘은 공동 주택들로 공동화 현상이 심각한 곳으로 손꼽히고 있다. 게다가 이들 공동주택은 모두 연면적 660㎡를 초과하는 4층 이하 연립 주택에 적용되는 3종 시설물에 포함되지 않아 안전 점검 대상에서조차 제외돼 지금까지 제대로 된 안전점검도 받지 못한 실정이다.
거주 공간으로서 최소한의 법적 보호 조차 받지 못한 셈이다.
사태의 심각성이 더해진 탓에 주민들은 구청이나 시청 등 행정당국이 노후 주택을 매입해 공공자산으로 활용해 주길 요구했지만 절차상 문제와 예산 확보 어려움 등으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병영성을 둘러싼 주민 재산권은 이제 사유 재산의 문제를 넘어 생존권과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병영성 인근 주민들의 ‘40년 묵은’ 숙원을 풀어낼 실마리가 제기돼 관심을 모은다.
오는 11월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이 개정을 앞두고 있다.
특히 개정안에는 시·도지사가 국가유산청장과 협의해 병영성과 같은 역사문화환경 보전지역 거주민을 위한 지원 사업을 추진할 근거가 담겨 있다.
주민 지원 사업은 복리 증진과 주택 수리 등 주거 환경 개선, 도로 및 주차장, 상하수도 등 기반 시설 개선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병영주민들이 안고 살아왔던 문제들 중 상당수가 포함됐다. 이와 함께 지방자치단체에 문화 유산을 전담할 수 있는 전문 인력도 지정, 배치할 수 있는 근거도 함께 마련돼 병영성에 대한 행정적 책임과 권한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문제는 울산시의 행정을 총괄하는 시장의 의지에 달려있다.
병영성 인근 주민들이 지난 40년 동안 눈물을 머금고 참아왔던 그 아픔과 고통의 세월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공감한다면 두 팔 걷고 나서야 한다.
오랜 세월 정치적 이해 관계에 얽혀 해법을 찾기 보단 갈등과 반목만 쌓아왔던 지난 시간을 반면교사 삼아 조금씩 천천히 엉킨 실타래를 풀어나가야 한다.
주민의 생존이 걸린 문제가 더 이상 몇몇 지역 정치인들의 놀음에 놀아나선 안된다.
이제 법적 근거도 마련된 마당을 무대 삼아 행정과 주민, 지역 정치권이 다함께 머리를 맞대 합리적 해결 방안을 찾아가는 공론의 장으로 펼쳐가야 한다.
무려 40년을 기다려 온 주민들이다. 의원 신분을 떠나 3대가 넘게 병영에서만 살아온 원주민으로서 더 이상의 기다림은 용납할 수 없다.
김도운 울산 중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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