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106]]12부. 사랑은 어디에서 오나(8) - 글 : 김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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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붉은 도끼[106]]12부. 사랑은 어디에서 오나(8) - 글 : 김태환
  • 경상일보
  • 승인 2024.10.2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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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 초식공룡의 발자국처럼 움푹 파인 부분이 있었지만 물살에 닳아 명확하게 공룡발자국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니 수자원공사에서 설치한 철책선이 나타났다. 외부인의 접근을 금지한다는 오래된 문구도 붙어 있었다. 아내는 문구를 보고 겁을 먹은 듯했다.

나는 문구를 의식하지 않고 계속 걸어 내려갔다. 철책은 양쪽 개울가에 설치되어 있을 뿐 개울 가운데는 장마 때 흐르는 물 때문에 설치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자꾸만 뒤처지려고 하는 아내를 끌고 하류로 내려갔다. 그렇게 십 분 쯤 내려갔을 때 버드나무 숲을 헤치고 개활지가 나타났다. 반곡천이 대곡천과 만나는 지점 너머에 낯이 익은 곳이 나타났다. 바로 반구대 암각화로 걸어가는 길었다.

나는 한참을 멈추어 서서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20년 전에 K가 학생들을 이끌고 걸어갔던 사막길이었다. 그때의 사막은 사라지고 버드나무 숲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 대곡댐이 생기면서 반구대 암각화가 물에 잠기는 일수가 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했는데 그 영향으로 상류의 침수지에 버드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을 만든 것 같았다.

내 기억은 20년 전의 사막을 시작으로 그녀의 야위고 흰 볼과 그 볼 위에 움푹 파인 볼우물을 떠올렸다. 그녀의 치맛자락을 흔드는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떠올렸다. K는 돌아왔을까? 아내가 다가와 내 손을 살짝 잡았다. 나는 깜짝 놀라서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내의 얼굴에는 어떤 간절함 같은 것이 배어나 있었다. 상을 치르는 내내 혼이 반쯤은 나가 있던 처형의 얼굴빛도 닮아 있었다. 이미 떠나간 사람을 안타까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갑자기 가버릴 줄은 몰랐어요. 정말로”

처형의 목소리는 상처를 입은 들짐승이 울부짖는 소리로 들렸다. 처형의 아픔은 고스란히 아내에게 전이된 것 같았다.

아내는 형부의 장례를 치르고 와서 뭔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이미 떠나버린 형부가 나 인 것처럼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동서와 나는 동갑인데다 나는 동서보다 체력이 영 말이 아니었다. 팔팔하게 백 살까지는 거뜬히 살아낼 것 같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죽고 나니 아내의 불안은 걷잡을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아내는 모르고 있었다. 나는 몸은 멀쩡하게 살아 있어도 마음이 이미 물기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은 사막으로 떠나버렸다. 마음이 떠나버린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버드나무 숲으로 변해버린 사막을 뒤로 하고 왔던 길로 되돌아 나왔다. 차를 타고 반곡 마을로 나와 북쪽으로 조금 올라간 뒤 반구대 암각화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 경부고속도로를 가로 지르는 다리를 건너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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