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 생각하며(56)]‘미안하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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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의 살며 생각하며(56)]‘미안하다’는 말
  • 경상일보
  • 승인 2024.10.2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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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살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할 일은 수없이 많다. 깊은 윤리의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도 항상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감정을 안고 살아간다. 가벼운 미안함을 넘어서 죄스러울 정도로 미안함을 느낄 때 우리는 죄송스럽다고 말한다. 미안하다는 말에는 다양한 감정 상태가 내포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과 태도가 사회생활에 필요한 윤리와 도덕의 기반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고대의 현자 소크라테스도 우리의 내면에는 윤리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정초해주는 그 무엇이 있다고 확신했다. 타인에게 미안하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동양 사상에서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인간의 네 가지 본성 중의 하나로 꼽는다.

‘미안하다’는 말은 참으로 하기 쉬운 말이다. 우리가 타인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도 이런 사과의 말이다. 심지어 타인을 무고하게 살해한 살인자도 카메라 앞에서, 상처를 입은 유족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 말이 상황에 합당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다른 말을 찾지 못할 때 우리는 흔히 미안하다고 말한다. 부끄러움을 표현하는 가장 쉬운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행동을 오히려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많다. 사과의 말이 자신의 실수를 스스로 인정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제때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못해 평생 척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주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심지어 부모 자식 간이나 형제자매 사이에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꺼내지 못해 사이가 멀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사과의 말은 국가나 사회 집단 간에서는 더욱 어려워진다. 수십 년간 이웃 나라를 침범해 무고한 사람을 수도 없이 살육한 국가도 미안하거나 죄송하다는 표현을 사용하기 두려워한다. 무슨 뜻인지도 알기 어려운 유감이라는 표현으로 얼버무린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분란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사과를 두고 수개월 넘게 정치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사과를 강요하는 사람들과 못하겠다고 버티는 사람들 사이의 지루한 공방이다. 개인 간에도 어려운 사과의 말을 이익 집단 사이에서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진심 어린 사과의 말은 국가 간이나 정치집단 사이에는 존재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집단에 이롭다고 판단할 때 취하는 언어적 수단일 뿐이다.

‘미안하다’는 말이 한 개인이 주위 사람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휴대폰으로 한 문장의 문자를 받았다. 미안합니다. 자식들의 동정을 알 정도로 가까운 사이지만 이 말의 뜻을 한눈에 해석하기는 쉽지 않았다. 잘못 보낸 문자일 것이라 가볍게 넘기고 말았다. 너무나 적극적인 삶을 영위해가는 부러운 사람이라 더욱 그러했다. 얼마 후 그의 딸로부터 부고를 받았다. 어머니가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는 소식과 함께. 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온전히 가늠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우리의 이성이나 감정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 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미안한 것이었을까. 누구에게 미안한 것이었을까.

‘미안하다’는 한마디 말에 단순한 느낌이나 감정이 아니라, 한 생애의 아픔이 담겨 있는 때도 있다. 세상살이에 필요한 아무런 경쟁력도 가지지 못하고 근근이 살아가다가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세상을 떠나면서도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남긴다. 친구로부터 시달림을 당하다 견디지 못해 몸을 던지는 청소년들도 이런 편지를 남긴다. 엄마 미안해. 이런 말에 포함된 슬픔과 고통의 깊이를 짐작하기는 어렵고 힘들다. 언어의 한계에 다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미안하고 죄송한 일들만 가득하다. 삶은 새로운 부끄러움을 만들어 가는 긴 여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의 말로 자신의 부끄러움을 온전히 해소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의 아픔은 어느 정도 위무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살아있는 지금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모두 ‘미안하다’고.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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