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울산으로 부임해서 본부장 사무실을 둘러보니 힘 있고 굵은 글씨로 쓰인 큼지막한 서예작품 ‘개원절류’(開源節流)가 이내 눈에 띄었다. 1984년 한국은행 울산본부 청사의 준공(개점은 1980년)을 축하하며 울산상공회의소가 기증한 것이었다.
나름 나에게는 생소한 문구여서 찾아보니 ‘財源은 열고 流出은 줄인다’는 뜻이었다. 제자백가 중 하나인 순자가 부국강병을 위한 길로 제시한 성어라고 한다. 당시 울산상공회의소의 깊은 혜안과 고민을 짐작할 수 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무실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계속 걸려 있었으니 오랜 세월 동안 계속 여러 선배 본부장님의 마음에 머물렀던 모양이다.
국가, 사회, 가정이 윤택해지려면 들어오는 것은 늘리고 나가는 것은 줄여야 한다는 것은 자고이래로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생산과 수입을 늘려 주머니를 넉넉히 만들고 이를 함부로 새지 않게 잘 관리하면서 요긴한 데에 규모 있게 써야 한다. 누구나 쉽게 수긍하기 쉬운 이 말이 정작 어려운 것은 실천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에 합당한 시스템과 실행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특히 씀씀이를 잘한다는 것은 흔히 엄격한 자기관리가 수반된다.
이를 이 지역에 대응해 보자면 울산은 開源의 측면에서는 양호하되 節流의 측면에서는 많이 아쉽지 않나 싶다. 울산지역의 1인당 지역총생산(GRDP, 2022년)은 7600만원으로 전국평균(4500만원)의 1.7배, 서울(5600만원)의 1.4배에 달해 생산활동이 매우 우수한 편이다. 우리나라 1인당 GDP가 3만5000달러(2023년)인 상황에서 울산의 1인당 GRDP가 약 6만달러에 근접한다는 것은 세계 어느 도시에 견주어봐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2가지의 큰 유출이 발생하고 있다. 첫째는 소득유출이고, 둘째는 소비유출이다. 소득유출의 경우 울산에서 창출된 부가가치이지만 대기업 본사 소재지나 근로자의 주소가 서울 등 다른 지역이기 때문에 기업과 개인의 소득이 울산의 소득으로 잡히지 않기 때문에 발생된다.
이에 따라 울산의 지역총생산(84.9조원)에서 약 21.6조원이 빠져 지역총소득(GRI)은 63.3조원이 된다. 생산 대비 소득비율(GRI/GRDP)은 전남(66.5%)에 이어 충남과 같은 74.6%를 보이고 있다. 서울 113.7%, 대구 114.7%, 대전 114.4%와 비교해서 매우 낮은 수치다. 지역총소득에서 기업소득 등을 제외하고 근로자소득만 따져볼 때 결과적으로 울산의 1인당 개인소득(처분가능소득)은 2700만원으로 전국평균(2500만원)과 큰 차이가 나지 않고 서울(2800만원)보다는 낮아지게 된다. 다만, 소득유출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유출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기업소득이 유출된다고 하더라고 여전히 해당지역에서 기업활동을 하기 때문에 필요한 투자나 영업과 관련된 자금지출은 계속 이루어진다. 또한 대기업과 공공·금융기관의 우수 근로자가 이 지역에 와서 직업생활을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일은 소비유출의 측면이다. 울산의 ‘소비유입 대비 소비유출 배수’를 보면 전국 최고인 2.3배로 2~3위(경남 1.9, 세종 1.6)와도 크게 높은 수준이다. 이는 외부지역 사람들이 울산에 와서 쓰는 돈보다 울산지역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 가서 쓰는 돈이 2배를 훌쩍 넘는다는 얘기이다. 사람들이 울산에서 돈을 벌고 다른 곳에 가서 쓰고 있는 상황이다. 뮤지컬이나 전시회를 가본다거나 수술을 위해 멀리 서울까지 가고 있다. 맛집, 쇼핑, 물놀이와 골프 등등을 위해 인접지역으로 이동하곤 한다. 최근에는 좋은 신축을 찾아 아예 이사를 가기도 한다.
이렇게 울산 사람들이 지역 내에서 소비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이 지역에서 돈을 쓸 때 효용가치가 다른 지역보다 낮기 때문이다. 즉, 다른 지역에서 돈 쓰는 재미가 더 크고 비용이 더 들어도 아깝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따질 일은 아니다.
효용가치에 따른 소비자의 선택은 나무랄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지금 내수가 부족해 경기가 좋지 못한 지금도 많은 국민들이 해외로 나가 소비하는 바람에 지난해 여행수지 적자가 125억달러에 달한다고 해서 나가는 국민들을 탓할 수는 없는 것과 같다. 국가 여행수지 적자가 막대한 데에 대한 화살은 국내관광지의 경쟁력 부족에 돌려야 하듯이 현재 울산의 지역간 소비수지 적자도 결국은 이 지역의 빈약한 소비 인프라에 그 원인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소비를 유도할 수 있는 대상을 키워나가야 한다.
소비를 다른 지역에서 하지 말고 내 지역에서 하자는 말이 어찌 들으면 지역주의가 아닌가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합리적인 수준에서 해외 소비를 줄이고 국내 소비를 늘리자는 것이 국수주의가 아닌 것처럼 지역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소하자는 것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또한 울산의 경우처럼 과도하게 외지에서의 소비가 점점 높아져 간다면 GDP의 58.5%(2023년)를 차지하는 소비와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산업이 이 지역에서는 발전되지 못한다. 이와 연관된 많은 일자리도 생겨날 수 없다. 그리고 산업 편중으로 인해 그만큼 각종 대내외 충격 발생시에 더 쉽게 지역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소소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 인접지역으로 이동해야 하고 지역은 생기와 활력이 없이 매력 없는 장소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울산은 인구 유출에다 소비 유출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인구유출은 점차 나아지고 있는 모습이어서 그나마 희망적이다. 높은 가계부채 부담에다 코로나 이후 모임 감소, 외식비 급등 등으로 국내 소비행태가 축소지향으로 나아가고 해외여행 선호 등으로 해외소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러한 큰 규모의 소비유출이 더욱 아쉬운 상황이다. 이제 소비유출도 줄어들면서 이 지역거리에 사람들이 많아지고 활력이 넘치기를 기대해 본다.
이강원 한국은행 울산본부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