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114]]13부. 흐르는 물(5) - 글 : 김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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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붉은 도끼[114]]13부. 흐르는 물(5) - 글 : 김태환
  • 경상일보
  • 승인 2024.11.0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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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을 때 이렇게 네 사람이 차를 타고 다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신복로타리를 지나 언양으로 가지 않고 부산방면으로 핸들을 돌렸다. K와 처음 만났던 울산대학교로 가기 위해서였다. 신복로타리에서 1킬로쯤 남쪽으로 내려가면 울산대학교 정문이었다. 방학 중이라 학교 안은 한산했다. 정문으로 들어가 본관 앞의 광장을 한 바퀴 돈 다음 도서관 건물을 지나 예전에 사회교육원이 있던 건물까지 갔다가 돌아 나왔다.

교문을 빠져 나올 때 룸 밀러로 김동휘를 바라보니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저릿해왔다. 20년 전에 같이 우산을 쓰고 도서관 옆길을 걸어 나왔던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차가운 봄비가 내리고 있었고 꽃을 활짝 피운 자목련이 속절없이 봄비를 맞고 서 있었다.

울산대학교를 나와 곧장 언양으로 갔다. 반곡마을에서 고하길로 접어들었다. 먼저 아내와 왔던 길이었다. 콘크리트포장길이 끝나는 지점에 멈추었다. 시간은 아홉 시 반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주변에는 사람의 그림자라곤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별의 시간이 가까워 옴을 느끼는지 김동휘의 양 볼에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김은경 시인은 낯선 길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이리로 가면 정말 반구대로 갈 수 있나요?”

“네. 내가 먼저 다녀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 물을 보세요. 이 물길이 대곡천으로 흘러들어가는 반곡천입니다.”

나는 차에서 내려서 유골이 든 배낭을 걸머졌다. 무게가 무거워서가 아니라 장례를 치르는 예식으로 그러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앞장서서 걸었다. 먼저 왔을 때 갔었던 편한 길을 찾아갔다. 조금 내려가자 갓바위가 나타났다. 먼저 번에 보지 못했던 치성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반반한 돌 위에 과일과 떡이 남아있고 녹아내린 촛농도 보였다.

과학이 발달한 21세기에도 바위를 찾아와 치성을 드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암각화를 새기던 시절에도 바위를 향한 사람들의 염원은 동일했던 같았다. 김동휘도 김은경 시인도 바위 아래 남아있는 치성의 흔적을 바라보고 나서 바위 꼭대기에 위압적으로 툭 튀어나온 갓바위를 올려다보았다.

개울을 따라 잠시 걸으니 곧바로 대곡천과 만나는 지점에 도착했다. 버드나무 숲이 끝나는 지점의 개활지였다. 김은경 시인이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건너편 버드나무 숲이 우거진 곳이 반구대 암각화로 가는 길임을 알아보았다.

“아니 반구대로 가는 길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데 왜 산을 넘어가도록 길을 낸 것이죠?”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반곡천이 암각화와 아주 의미가 있는 곳인데 학자들도 모르고 있더군요. 언제부터 길이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모두 이 길을 이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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