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부터 학교 교실에서 디지털 교과서가 사용될 예정이다. 초중고 학교급별로 학년을 나누어 순차적으로 운영되는 디지털 교과서는, 학생 개인별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 언제 어디서나 교과서에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 다양한 시청각 자료로 학습 흥미를 높일 수 있다는 등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학부모와 교사들은 디지털 교과서에 여전히 난색을 표한다. 조 단위의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라면, 분명 그만큼 혁신적일 터이고 긍정적 효과가 확실할 터인데, 무엇이 문제일까.
우선, 학생 개별 맞춤형 수업이 용이하다고 하는 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교사로서 디지털 교과서 연수를 받아보며 미리 경험해 본 바로는, 디지털 교과서는 학생 각각이 어떤 문제를 어려워하는지 파악이 가능하고 학생 수준에 맞는 문제들을 보충 과제로 제시할 수 있다. 기능 자체로만 보면, 학생들의 학습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다. 문제는, 그게 수조 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디지털 교과서로만 가능한 일이냐는 거다. 현 교실에서도 교사들은 무수히 학생 개별 수준을 파악하고 수준에 맞는 과제들을 제시한다. 학생 수준을 파악하는 일은 현재 종이 교과서 수업으로도 충분하고, 이미 구축되어 사용되고 있는 E클래스 같은 시스템으로도 가능하다. 또한,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즉각 참고하며 공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현재도 시청각 자료는 풍부하다 못해 넘쳐난다. 만약 아이들 스스로 시청각 자료들을 찾아내고 공부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면, 굳이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해야만 하는 일일까. 현재 많은 학교에서 스마트 패드 기기를 보유하고 있기에 스마트 패드로도 충분히 직접 자료를 찾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멀티미디어 자료는 글로만 이해하기에 어려운 개념을 가르칠 때 최소한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너무 많은 영상자료와 효과음 등은 오히려 학습자의 시선을 빼앗고 학습 몰입을 방해한다.
무엇보다도 종이책 학습은 학습자들이 텍스트들의 공간성을 획득하게 하고, 공간성을 바탕으로 내용을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정리할 수 있게 돕는다. 책의 앞부분인지 뒷부분인지 손으로 종이를 넘겨보면서 내용을 유추하기도 하고 개념을 정의하고 분류하기도 한다. E-BOOK이 처음 책 시장에 등장했을 때 모두가 종이책이 사라질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E-BOOK 시장보다 종이책 시장이 더 활성화되는 건 E-BOOK으로 책을 읽는 것보다 종이책이 훨씬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되고 기억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사람 일을 대신하고 삶을 편하게 해주는 세상이 도래했으니, 교과서 역시 학습자가 편하게 학습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않겠냐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편하다고 해서 꼭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적어도 공부만큼은 아날로그인 편이 좋다. 위키피디아처럼 모든 자료가 집대성되어 있는 디지털 교과서는 학습자를 수동적으로 만든다. 물론, 디지털 교과서도 학습을 위해 만들어진 매체이기에 학습에 무조건 악으로 작용할 거로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조 단위의 예산이 투입될 만큼 수조 원의 혁신과 학습 효과가 보장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김보아 화진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