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일에는 끝이 있으며, 인간에게도 끝이 있다. 이를 동양에서는 생자필멸로 표현하고, 서양에서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를 외친다. 현대인에게도 같은 이치로, 집안의 가장 역할도 넘겨주어야 할 때가 있고, 회사원과 공무원도 퇴임시점이 있으며, 민주국가의 선출직 공직자도 내려올 때가 정해져 있다.
그러나 오만한 리더는 자신의 권력이 영원할 것으로 착각하여 안하무인으로 상대를 업신여기고, 자기도취에 빠져 혼자 독불장군처럼 행동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페로의 <신데렐라>에 등장하는 계모와 언니들도 끝모를 자만과 탐욕에 빠져 파국을 맞이하는 경우이다. 우리 주위에 이러한 리더가 있어 고집을 피우면 그 가정, 회사, 나라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리더그룹의 교만이 일으킨 불공정과 아전인수에 매몰되어, 토론과 소통이 사라지고 미래사회 대처능력이 약화된 상태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우선 리더는 자신의 임기와 권한이 끝날 때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 깨달음은 리더의 영적 성숙과 심리적 자존감 회복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또한 겸손한 리더가 되어, 젊은이-후배-부하-정적에게도 예의를 갖춘다면, 소속 공동체는 조속히 안정되고 무한한 발전을 기약할 것이다.
서양인들은 성공후 오만해지기 쉬운 리더들을 어떻게 경계하고 훈육하였을까? 옛 로마는 전성기때 광대한 영토확장을 시도하였고 전쟁이 일상화되었다.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귀환한 전쟁영웅들을 위하여 개선퍼레이드를 열어주었다. 이때 특별한 전통이 있었는데, 개선장군이 사두마차를 타고 로마 시내를 행진할 때, 장군의 뒷자리에서 노예 소리꾼이 ‘메멘토 모리’를 귀에 속삭였다고 한다. “죽음을 기억하라”고, “끝날 때를 기억하라”고. 이는 로마 시민들의 환영함성 속에서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교만해지거나 자기애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사회적 경고장치였다.
리더의 교만함에 대한 끊임없는 경계와 경고는 서양 중세시대의 전통으로 이어진다. 중세 어느 수도원은 수도사들에게 ‘메멘토 모리’를 인사말로 쓰게 하면서 리더훈육을 하였다. 가톨릭 교회는 인간이 범하기 쉬운 근원적인 7대 죄악 중에서도 교만을 으뜸되는 죄로 보고 이를 경계하였다. 현대에 와서도 큰 문제점은 성공한 사람들은 왜 교만해지는가이다.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에서 오스트리아의 과학 저널리스트인 플로리안 아이그너는 말한다. “물론 개인의 사회적 성공에는 개인의 노력도 작용한다. 하지만 실제론 훨씬 더 많은 우연적 요소가 작용함에도, 우리는 이를 간과한 채 온전히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로 믿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흔히들 가장 성공한 사람들이 가장 노력을 많이 하고 가장 똑똑하고 가장 부지런한 사람들이라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한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이 역시 교만, 오만 또는 우월주의에 대한 경고이다.
리더는 자기애 또는 나르시시즘에 빠지기 쉽다. 자기애란 자신의 외모, 능력 등에서 지나치게 자기 자신이 뛰어나다고 믿거나 잘난 체하는 행동을 말한다. 심하면 인격적 장애증상으로 본다. ‘정신의학신문’ 기고글에서 조현우는 직장에서 만난 성격이 이상한 상사를 분석한다. 정신의학 관점으로 보면 ‘성격장애 또는 인격장애가 의심되는 경우’이다. 업무성과에 별도움이 안되는 명문대 출신 상사는 타인 비방에 능하고, 자신의 자존감에 손상을 입었다고 생각하면 분노를 잘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수시로 타인을 이용하고, 타인이 입은 상처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렇다면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가진 윗사람은 개선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실망스럽게도 그는 상당히 어렵다고 답한다.
가정, 회사, 나라에서 이 유형의 리더는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 자기자신쪽에 있는데 자신만 모른다는 것이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 영어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