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흘러도 끝내 잊을 수 없는 님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매창집>

과히 별리의 절창이 아니고 무엇이랴. 매창의 시를 거문고 산조에 얹어서 외우면 시조에 절조를 더하여 차마, 그 비장미에 덩달아 애가 끊어질 듯하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는 권력을 취하여 일가(一家)를 이루려 하고, 여자는 사랑을 취하여 아름다워진다. 별리의 시에서 속절없는 조락의 계절에 애간장은 또 한 번 조인다.
이화는 이미 흩어진 지 오래 이고 가을비 듣는 늦은 오후다. 우리의 속 뜰도 촉촉하게 젖는다. 온 여름 바싹 마른 뜰에서 바스락대던 정서도 어느새 떨어지는 낙엽으로 가득찬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겐 그 누구에게나 봄이 있으면 가을이 있다.
사랑의 정한(情恨)에도 언제나 별리가 따르기 마련, 여기에 조선의 명기(名妓) 매창의 시 이화우(梨花雨)가 있다.
그녀는 부안 아전(衙前)이탕종의 서녀였다. 부친으로부터 한문을 배웠는데, 그것은 후일 깊이와 심미적인 정조의 시조를 이루는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매창은 조선 중기 당대 최고의 여류시인 황진이, 허난설헌과 더불어 조선 여성 시인 3대 산맥을 이루었다. 그녀의 시혼의 향기는 4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가을비 속으로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적신다.
비록 수청을 들어야 하는 한낱 기녀였지만 한번 준 마음은 정절의 미덕으로 이토록 애절한 별리의 절창을 노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녀의 시를 대하면 그리운 벗을 만난 듯하다. 그녀는 태도가 얌전했으며 행동이 단아했으리라 짐작한다. 품성 또한 고고하여 천금을 준다 해도 천박한 졸부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던 그녀였다. 난향(蘭香)이 십리라면 그녀의 미덕과 시향(詩香)은 시대를 건너 천년세월을 울리고 적신다.
시(詩)의 존재는 시대를 초월하여 죽지 않는 유일한 생명으로 존재한다.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