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98)]아비뇽, 로마를 떠난 교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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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98)]아비뇽, 로마를 떠난 교황청
  • 경상일보
  • 승인 2024.11.1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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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아를(Arles)에서 기차로 10여분 북쪽을 향해 달리면 아비뇽에 도착한다. 이 도시 역시 프로방스 지방 론 강 유역에 자리 잡고 있다. 강물이 날라다 준 비옥한 충적토와 수운을 기반으로 형성된 도시다. 아를과 다른 점은 비교적 높은 구릉지대를 배경으로 도시를 건설했다는 점이다. 푸른 강물과 끊어진 다리, 강기슭에 녹음을 드리우는 울창한 숲과 고색창연한 고성, 프로방스의 목가적인 정경이 라벤다 향처럼 아름답다. 하지만 무언가 애달픈 사연을 감춘 여인의 미소처럼 애잔함이 묻어 있다.

이 도시의 연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309년 아비뇽 유수라는 사건으로 돌아가야 한다. 프랑스 왕 필립 4세가 이탈리아 로마에 있던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강제 이전시킨 사건이다. 교황은 프랑스 왕에게 포로로 잡혀 아비뇽에 강제 유폐된 형국이니, 유대인들이 바빌론 땅에 포로로 끌려간 사건처럼 ‘아비뇽 유수(幽囚)’라고 부른다. 유럽 사회가 기독교화된 이후 종교 권력과 정치권력 간의 오랜 갈등과 대립의 과정에서 정치권력의 승리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이후 교회 대분열 시기까지 백여년 간 아비뇽은 교황청이 소재하는 로마 가톨릭의 수도로 기능했다.

교황의 이동은 단순히 교황이 거처를 옮기는 일이 아니었다. 중세시대에서 교황은 교황청을 중심으로 교황령을 직할 통치하는 국가의 수반이다. 그 안에는 시민뿐만 아니라 교회조직에 소속된 수많은 성직자와 교인들을 수용하는 시설이 필요하게 된다. 아비뇽도 교황의 도시로서 재조직, 재정비가 진행되었다. 도시 외곽에 성벽과 성문이 견고하게 구축된 것도 14세기의 일이다.

▲ 아비뇽 교황청.
▲ 아비뇽 교황청.

교황궁과 대성당, 주교관 등이 있는 핵심구역은 사각형의 넓은 광장과 접하고 있다. 광장은 정연한 형태도 아니고, 압도적일 만큼 거대하지도 않으며, 화려하게 꾸미지도 않았다. 아케이드로 구획된 정연한 공간성이나 방향성, 오브제와 같은 구심적 장식성도 없다. 바티칸 광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초라한 편이다. 축의 정점도 교황궁이 아닌 대주교관(Petit palais)를 향하고 있다.

아비뇽 교황궁은 중세시기 봉건영주의 성과 같은 모습이다. 유럽의 로마네스크 건축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지만, 그리 거창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뾰족한 고깔 지붕의 탑들이 장난감 모형처럼 동화적인 모습이지만 대단히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파사드를 갖는다. 철옹성같은 전투용 성곽의 모습이다. 도대체 교황이 누구로부터 공격을 받기에 이런 성곽이 필요했을까.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는 것인지, 나가는 것을 감시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로마네스크의 근엄함에 석회암 외벽의 우중충함이 더해져 더욱 황량하고 을씨년스럽다.

내부공간은 중정을 둘러싸는 두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경사지의 윗 구역이 먼저 건설된 구 궁전(Old palace)이고, 아래 구역이 나중에 확장된 신 궁전(New palace)이다. 각 구역은 회랑형 공간으로 폐쇄적인 중정을 에워싸고 있다. 내부공간으로 들어서면 궁전이라 하기에는 초라할 만큼 허름하다. 본래는 프레스코화, 테피스트리, 그림이나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지금은 마감재까지 벗겨져 골조가 드러날 정도로 노후된 모습이다. 15세기 이후 교황청이 로마로 귀환하면서 폐기된 후 아무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부공간도 공들여 만든 조경물 하나 볼 수 없이 공허하고 쓸쓸하다. 정원이라고 부르는 외부공간은 아예 건물 밖에 소재한다. 궁의 정원이라고 하기에는 지극히 작고 허름한 조경이다. 성채을 따라 직사각형으로 길게 조성된 화단이 거의 채마 밭 수준이다. 녹슨 분수대마저 부끄러운 듯 한구석에 숨어있다. 교황을 중심으로 정치적 권력을 휘두르던 로마 가톨릭 교회의 위상이 쇠망하고 있음을 증언하는 현장인 셈이다.

교황궁의 위쪽으로는 대성당이 자리한다. 원래 아비뇽 대주교가 주재했던 주교좌 성당이었다고 한다.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던 모습에서 아비뇽 유수 이후 증·개축이 이루어졌다고는 하나 건축양식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교황청의 대성전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소박하다. 내부공간도 로마네스크의 수수함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바티칸 베드로 대성전의 호화찬란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중세 소도시의 성당 수준이다. 성당 앞에 세운 플랫폼과 십자가상이 훨씬 고상하다. 19세기에 재건하면서 세운 종탑 위에 금박을 입힌 성모상을 세워 체면을 차렸다.

중심구역보다는 차라리 골목에 숨어있는 작은 교회나 박물관을 찾는 것이 더 흥미로울 것이다. 14세기 이래 각 시대를 대표하는 다양한 건축양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성 마샬 교회(Saint Martial temple)은 14세기에 건설되었지만 고딕 양식의 초기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교회다. 위압적으로 크지도 높지도 않으나 고딕건축의 중후함을 갖추었다. 장식적인 처리 없이 길게 뻗은 버트레스(날개 벽)은 고딕의 구조적 솔직성을 보여준다.

아비뇽의 성 베드로 성당(Basillica de Saint Pierre) 역시 14세기에 재건된 교회지만 그 파사드에서 고딕 양식의 전성기를 볼 수 있다. 장중하면서도 화려한 파사드는 중심구역의 교황궁이나 대성전보다 더 품격있는 모습이다. 커튼처럼 우아하고 섬세하게 조각된 파사드의 장식은 고딕 양식의 육중한 매스감을 완화시켰다. 프랑스 고딕 양식의 장식적 발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강변으로 나가면 교황청보다 유명한 ‘아비뇽 다리’를 볼 수 있다. 중간에 작은 교회를 품고 있는 다리는 중간이 끊겨있기에 더욱 유명하다. 교황을 모시고 제2의 로마를 꿈꾸었을 아비뇽의 혁명은 백 년을 넘기지 못한 채 무너졌다. 끊어진 다리와 아비뇽의 슬픈 역사가 겹쳐 보인다. 그들은 왜 다리를 복원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미완이기에 더 애잔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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