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찾은 울산 북구 연암동 울산노동역사관1987 기획전시실. 배문석 울산노동역사관 사무국장의 안내에 따라 ‘이관술, 항일혁명의 길’ 아카이브 전시를 둘러봤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된 자료들도 여럿 있었다.
1902년 울릉도에서 태어난 이관술은 1905년께 러일전쟁 등의 영향으로 가족 전체가 울산 입암마을로 이주하면서 울산과 인연을 맺었다. 선바위에서 뛰어놀던 소년이 동경고등사범학교로 유학을 떠나고 이후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에 지리역사교사로 부임하기까지 이관술은 엘리트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경성여학생만세운동과 경성트로이카 지도자 이재유를 만나면서 이관술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경찰의 감시를 피해 가족들과 오랜 시간 만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노덕술에게 고된 고문을 당하는 등 항일혁명의 길은 순탄치 못했다.
전시장 한편에 있는 철창 파티션을 보면서 조국에는 항상 감옥이 있었다고 말하는 이관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관술이 그토록 바라던 독립이 되고나서도 이관술은 정판사 조작사건에 연루되는 등 고난이 끊이질 않았다. 여전히 정판사 조작사건의 진실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관술은 1950년 49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골령골에서 학살되며 삶을 마감했다.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모든 세월이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가슴이 아팠던건 이관술을 기리기 위해 세운 유적비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사실이었다. 현재 이관술의 유적비는 입암마을에 임시로 보존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관술의 생애 뿐만 아니라 이관술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동료들도 함께 조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는 평가다.
손학순 더블린 한글학교 교장은 “해외 동포로서 항상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고있지만 이관술의 일생은 너무나 감동적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박삼주 시인은 방명록에서 “불의가 법이 되면 저항은 의무다”라고 했으며, 한 관람객은 “정판사 조작사건이 뒤늦게나라 밝혀지길 바란다”라고 적었다. 권지혜기자 ji1498@ksilbo.co.kr
저작권자 © 울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