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년째 서예·문인화 교실 운영
지난 15일 찾은 울산 중구 명륜로 44 송경서화실. 이 곳은 이재영 문인화가의 아호 송경(松耕)을 따 지은 그의 작업실이자 서예와 문인화를 가르치는 장소이기도 하다. 서화실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한 쪽 벽면에 걸려 있는 약 150호 크기의 작품이다. 한가로운 봄날을 주제로 홍매화가 피어 있는 시골집 마당을 닭과 병아리가 노닐고 있는 모습이다. 그의 작품에는 홍매화와 닭, 참새 등이 자주 등장한다.
이 문인화가는 “붓을 들고 작품을 만드는데는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보통 4~5시간 정도 걸리나, 그 전에 어떤 화제와 구도 등으로 그릴 지를 정하는 게 어렵고 몇 일 동안 고민을 하게 된다”며 “가장 아끼는 작품은 어렵게 완성했던 울산시청 로비에 걸린 약 200호 크기의 홍매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의 서화실은 그가 울산에 내려온 뒤 5번째로 올해로 25년째 운영하고 있다. 서화실 한 켠에 책꽂이에 있는 책들은 언뜻 봐도 수십년이 된 듯 했다. 특히 문인화 화제집은 오래돼 해지고 닳아 군데군데 테이프로 붙여놓았다.
이 작가는 “이 화제집은 저의 첫 스승이신 월봉 정석환 선생님(동양화가)께서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스무살 무렵에 주신 것으로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가보와도 같은 것”이라며 “40년이 넘었으나 버릴 수가 없어서 이렇게 계속 보관하면서 작품을 할때 참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화제집뿐 아니라 서예교본 등 꽂혀있는 책들은 물론 붓과 작업 도구 등이 최소 20~30년 이상 된 것들이어서 서화실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고향에 개인 미술관 건립 소망”
이 작가가 화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두광중학교 1학년때 숙제로 제출한 반공 포스터를 본 미술교사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숙제물을 복도에 걸어준 게 계기가 됐다.
그 이후로 틈만 나면 그림 그리는 것을 즐겨하던 중 고등학교 3학년때 경주에서 활동하던 정석환 동양화가가 소문을 듣고 그의 집을 찾아오면서 변곡점을 맞게 된다. 그때부터 정 화가의 경주 화실에서 본격적으로 서예와 동양화 수업을 받았다.
고교 졸업 후 건천 월성요업에서 도자기 그림을 아르바이트식으로 그리면서 도자기 그림에 매력을 느꼈던 그는 더 큰 꿈을 안고 무작정 경기도 여주로 향했다. 그곳에서 백자에 그림을 그리며 실력을 갈고 닦았고, 이후 서울 압구정 도자기 공방의 사장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다시 한 번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낮에는 공방에서 도자기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구창서 한국화가로부터 산수화를 사사한 이후 1990년 3월 고향인 울산에 서화실을 열고 35년째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현재까지 그가 그린 작품은 3000여점이며, 개인전 5회, 단체전은 1000여회에 이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회로는 프랑스에서 열린 특별 초대전을 꼽고 있다. 그는 “제 수업을 수강한 프랑스 학교 한국어 교사의 초청으로 전시회를 갖게 됐는데, 현지 프랑스인들이 문인화에 대해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문인화와 서예의 매력에 대해 “문인화는 시·서·화 그리고 여백 낙관이 어우러져 완성이 되는 퓨전적 현대 미술”이라며 “서예는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인간성 상실로 이어지는 요즘같은 시기 초중등 교육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도 후진 양성은 물론 개인전을 통해 많은 분들과 소통의 기회를 가지려 한다”며 “마지막으로는 두동 본가에 개인 미술관을 짓는 것이 소망이다”라고 밝혔다.
차형석기자 stevecha@ksilbo.co.kr
저작권자 © 울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