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수년 전에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지방 론다(Ronda)를 방문했을 때 투우를 사랑했던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산책길과 동상을 보고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 때 종군기자로 참가한 체험을 바탕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을 뿐 아니라, 아프리카를 돌아다닌 경험을 <킬리만자로의 눈>으로 형상화했다. 낚시를 즐기며 28년간 살았던 쿠바, 노벨상 수상작 <노인과 바다>를 집필한 아바나 근교에는 헤밍웨이 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이처럼 그가 발자취를 남긴 곳은 명소가 되어 세계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니 문인 한 사람이 얼마나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선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필자는 여기서 울산 문학의 창의적 산실이 될 ‘울산문학관’ 건립에 대해 다시 언급하고자 한다. 누차 강조했지만, 문학은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인문학적 대답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국어책에서 ‘혹부리 영감’이나 ‘금도끼 은도끼’ 같은 문학작품을 읽으며 바람직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형성하고 미래의 꿈과 희망을 키워왔다.
이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한 한국 문학과 더불어 울산 문학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질 시점에 왔다. 연전에도 밝힌바, 우리나라에는 마산, 문경, 당진, 홍성, 순천을 비롯한 많은 중소도시에 문학관이 있고 이육사문학관, 이효석문학관, 최명희 문학관, 김삿갓문학관, 동리목월문학관 등 문인 이름을 붙이거나 가사문학관, 유배문학관, 아리랑시조문학관, 설화문학관 등 장르별로 건립한 문학관도 많다.
특히 광역자치단체에는 종합 문학관이 없는 곳이 없다. 대전문학관을 비롯하여 광주, 대구, 제주문학관, 전주에 소재한 전북문학관, 창원의 경남문학관, 건립 중인 부산문학관, 인천의 한국 근대문학관, 서울에는 국립한국문학관 등이 있음에도 유독 울산에만 문학관 건립 소식이 요원하다. 그간 건립 추진위원회가 구성되기도 했지만, 문학관의 필요성에 대한 주변의 인식이 확립되지 못한 탓인지 번번이 좌절된 것이 사실이다.
울주군의 ‘오영수문학관’처럼 문인 개인을 기리는 문학관은 그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지역의 종합적인 문학 자원을 보존하고 문학 강좌 개설, 창작실 운영, 콘텐츠 구축, 작고 문인들의 작품이나 연로한 문인들이 소장하고 있는 중요 기록물의 보관 및 전시를 위한 상설 공간이 필요하다. 문학관에서는 저명 작가를 초청하여 특강을 하기도 하고, 작가와의 대화, 북 토크, 독자 낭송회, 문학 연극 등을 통해 시민들의 문학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문학 향유의 기회를 확대·제공함으로써 감성을 공유하고 정신문화 역량 강화를 가능하게 한다. 전국적으로 독서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울산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예술인 센터’ 건립과 더불어 문인들의 발자취를 보존하고 문학 자료, 소장 기록유산을 집대성할 수 있는 문학 공간확보의 적기(適期)이다.
문학관은 도서관과 함께 지방이나 국가 문화유산의 총본산이며 정신문화가 망라되고 창조되는 곳이다. 작고 문인들이 남긴 귀중한 사료나 기록물, 앞으로 원로 작가들이 부재 시에 은폐되거나 버려질지도 모르는 유의미한 자료들을 기증받아 재생·보관·활용할 수 있는 수장고(收藏庫)를 구축하는 일은 시급해 보인다.
‘울산문학관’ 건립계획이 기약 없이 지체된다면 울산을 상징하는 역작들과 저작물, 방대한 기록물이 사장될 수도 있다. 이 순수문학 자료들을 조속히 집대성하여 ‘울산문학관’에 보존하고 시민을 위해 활용한다면 울산의 문학 역량이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우리 지역 문화예술 발전은 물론 한국 문학 융성에 큰 기틀이 되리라 믿는다.
권영해 시인·전 울산문인협회장
저작권자 © 울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