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차기구축함(KDDX)과 관련해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그간의 앙금을 풀고 전격적으로 화해했다.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초유의 ‘방산 호황’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두 방산 기업은 앞서 지난 8일 10조원 규모의 호주 호위함 사업 입찰에서 일본과 독일 기업에 밀려 모두 탈락했다. 탈락 원인이 소송 리스크 및 정부와의 불협화음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게 기업을 화해 모드로 이끄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국내 방산 산업의 발전과 해외시장 경쟁력 강화, 울산지역 특수선(잠수함, 구축함 등) 사업 활성화 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화오션은 지난 22일 경찰청을 방문해 지난 3월 제출한 HD현대중공업 고발을 취소했다. 한화는 “상호 보완과 협력의 디딤돌을 마련하는 것이 국익을 위한 일이라고 판단했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HD현대중공업 직원의 군사 기밀 유출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자 경찰에 고발장을 냈고, HD현대중공업도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했다.
이번 화해는 김동관 한화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사전에 만나 해당 사안을 조율하면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 기업은 향후 입찰을 진행 중인 폴란드(3조원 규모), 캐나다(70조원 규모) 잠수함 프로젝트에 ‘원 팀’으로 출격할 예정이다.
HD현대중공업은 입장문을 통해 “한화오션이 고발을 취소한 데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라며 환영했다. 때마침 HD현대중공업 노사는 이날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타결하는 데 성공해 겹경사를 맞았다. 현대중공업을 앞세운 울산 조선업은 친환경 선박 수주 확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한미 조선 협력 강화, 미국 함정 MRO 시장 진출 등으로 제2의 호황기를 맞고 있다.
두 기업 간 화해의 모양새는 갖췄지만,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건 아니다. “KDDX 사업이 많이 지연된 만큼 한화오션의 방산업체 지정 신청도 철회돼야 한다”라는 현대중공업의 주장에, 한화오션은 방산업체 지정 신청 강행 의사를 밝히며 KDDX 사업 수주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한배를 탓지만, 아직은 ‘불안한 동거’다. K-방산의 미래는 두 기업이 어떻게 오월동주(吳越同舟)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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