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눈썹들이
도시의 하늘에 떠다니네
그 사내 오늘도
허리 굽혀 신발들을 깁고 있네
이 세상 눈썹들을
다 셀 수 없듯이
이 세상 눈들의 깊이
다 잴 수 없듯이
그 계집 오늘도
진흙 흐린 천막 밑에 서서
시드는 배추들을 들여다보고 있네
11월.
피로와 고단함 묻어나는 11월

나란히 서 있는 잎 진 나무처럼 11월은 쓸쓸함과 외로움, 잿빛과 갈색의 이미지다. 청명한 시월이 지난 뒤 추적추적 흐리고 비가 잦은 달. 쨍한 바이올린이 10월을 나타내는 악기라면 부드럽고 깊이 있는 비올라는 11월의 악기다.
이런 11월의 이미지를 시인은 허리 굽혀 신발을 깁는 사내와 시드는 배추를 들여다보는 계집으로 표현하였다. 한 해의 마지막 언저리에 다다르기까지 열심히, 묵묵하게 걸어오느라 헤져 버린 신발. 11월은 언덕바지를 오르는 나그네처럼 피로와 고단함이 살짝 묻어나는 계절이다. 11월은 시드는 배추 같은 달이다. 실한 배추는 김장할 때 뽑혀 나가고 배추밭엔 빈약한 것들만 듬성듬성 남았다. 그 위를 황량한 바람이 지나간다.
도시의 하늘을 떠다니는 ‘수많은 눈썹들’은 아마 눈썹을 닮은 나뭇잎일 테고, 나뭇잎은 곧 낙엽이 되어 포도 위를 구를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연처럼. 그리고 우리는 불가에 앉아 손을 쬐며 두런두런 그 사연을 나누게 될 것이다.
아라파호족은 11월을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 하였다. 그러니 겨울이 오기 전 희미한 온기 속에서 서로 곡진히 바라볼 일. 나란히 손을 잡을 일.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