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353)]오동나무와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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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353)]오동나무와 은행나무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4.11.2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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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11월 말의 찬바람이 옷소매로, 옷깃으로 파고드는 계절이다. 황량한 들판에는 마시멜로 같은 하얀 ‘곤포 사일리지(梱包 silage)’가 나뒹굴고 있다. 나무에는 마지막 잎새들이 우수수 소리를 내면서 떨어진다.

오동잎 한잎 두잎 떨어지는 가을밤에/ 그 어디서 들려오나 귀뚜라미 우는 소리/ 고요하게 흐르는 밤의 적막을/ 어이해서 너만은 싫다고 울어대나~~.


만추의 낙엽들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오동나무 잎이다. 사람 얼굴 만한 잎이 ‘뚝’ 떨어지면 비로소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오동잎’은 197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최헌의 노래다. 지난 22일은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었지만 눈은 안 오고 가을 찬바람에 오동잎만 계속 떨어지고 있다.

▲ 오동나무 단풍잎.
▲ 오동나무 단풍잎.

오동나무의 특징은 빨리 자라고 잎이 크다는 점이다. 15년 쯤 되면 키는 10m를 넘기고 둘레는 한아름이나 된다. 잎은 20~30㎝ 정도로 웬만한 부채만 하다. 오동나무는 나뭇결이 아름다워 가구 목재로 자주 이용했다. 특히 딸이 태어나면 집 근처에 오동나무를 심어 딸이 출가할 때쯤이면 혼수가구를 장만하기도 했다. 사람이 죽고 나면 관을 짤 때도 쓰였다.

오동나무는 또 거문고, 가야금, 비파 등의 악기를 제작하는데 많이 쓰였다. 악기가 뒤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문신 신흠은 ‘오동나무는 1000년이 지나도 가락를 품고 있다’(桐千年老恒藏曲)고 노래한 바 있다.

오동나무 못지 않게 가을 정서를 대변하는 나무로는 은행나무를 들 수 있다. 이 때 쯤 신문사 앞 가로수 은행나무에서는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은행나무의 ‘은행(銀杏)’은 은(銀) 빛이 나는, 살구(杏)처럼 생긴 열매가 달린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3억5000만년 전 고생대에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찰스 다윈은 은행나무에 ‘살아 있는 화석(living fossil)’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기까지 수십년이 걸리기 때문에 공손수(公孫樹)라고도 한다. 할아버지가 은행을 심으면 손자가 그 열매를 먹게 된다는 뜻이다.

오동나무나 은행나무의 잎이 완전히 떨어지면 비로소 겨울이다. 오동나무와 은행나무는 벌레가 잘 먹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오동나무는 악기나 가구로 수백년을 살고, 은행나무는 화석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겨울은 오지만 오동과 은행은 겨울이 두렵지 않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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