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사람 손희천의 아내 열녀 하씨는 남편이 병을 얻어 죽자 곧 따라 죽으려고 했으나 임신 6개월 중임을 들어 만류하는 시어머니 때문에 죽지 않고 살아 있다가 마침내 아이를 낳았다. 출산 후 4, 5개월이 지나자 하씨가 아이에게 미음을 먹였더니 아이가 미음을 받아먹었다. 하씨가 기뻐하여 말하기를, “아이는 젖을 먹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라고 말하고는 사람이 없는 때를 기다려서 몰래 죽었다.
월성 최원태의 아내 박씨는 남편이 돌림병으로 죽자 겨우 세 살과 다섯 살 아이에게, “너희 형제는 이미 밥을 먹을 줄 아니, 내가 없어도 명을 보전할 것이다”라고 하고는 자결했다. 두 여자는 모두 국가로부터 열녀로서 정표되었고 국가 공식 기록물에 등재되어 후손들에게 널리 보급되고 권장되었다.
그런데, 출산 후 4~5개월 만에 아이가 미음을 받아먹자 자결했다는 하씨, 세 살과 다섯 살 아이에게 이제는 밥을 먹을 줄 안다고 자결한 박씨, 이들의 행위가 장하다고 표창한 정부, 그것을 좋은 일이라고 국가 공식기록으로 남긴 사람들, 우리 집안에 열녀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후손들, 모두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올바른 태도라고 보기 힘들다.
아이를 두고 자결한 두 열녀는 스스로 선택한 삶이라고는 하지만, 표창받고 칭송받고 권장되어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이념이 지배하는 사회의 희생자일 뿐이다. 저들의 행위를 담은 책을 편찬하고 널리 보급하는 행위는 윤리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약자에게 가해진 도덕의 폭력이다.
이념이란 게 본질은 대체로 인간 사회를 위하겠다는 좋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럴싸한 명분으로 포장되어 사람들을 미혹하면서 실제로는 그것을 주장하고 강조하는 사람들의 이익 추구(또는 수호)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반복적이고도 집요하여 사람들을 세뇌한다는 데 있다. 시나브로 세뇌당한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가 잘못된 것인 줄도 모르고 올바르다고 행한다. 세뇌는 대체로 편향된 접근에서 나온다. 다양한 시각과 접근, 비판과 검증의 사고는 세뇌를 줄이는 좋은 방편이다. 현대 사회는 세뇌하기 좋고 세뇌당하기 좋은 사회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내가 누군가를 세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누군가로부터 세뇌를 당하고 있지는 않는지 잘 살펴볼 일이다.
송철호 한국지역문화연구원장·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