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속의 꽃(22) 갈대꽃]물가에 피어나는 호젓한 가을 정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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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속의 꽃(22) 갈대꽃]물가에 피어나는 호젓한 가을 정취
  • 경상일보
  • 승인 2024.12.0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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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범중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명예교수·'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

갈대는 1960년대 중반에 나온 ‘갈대의 순정’이라는 가요를 통해 널리 알려진 식물로 물가에 자생하는 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8월 하순부터 9월까지 피는 갈대꽃은 처음에는 자주색을 띠다가 차츰 흰색으로 바뀌며 산들바람에도 크게 흔들리는 속성을 지닌다. 윤기(1741~1826)의 시 ‘갈대꽃(蘆花)’ 중 ‘높은 곳에 올라서 강가를 굽어보니, 문득 십 리나 하얗게 펼쳐져 있네.(登高俯江干 忽然十里白)’라는 대목은 흐드러지게 핀 갈대꽃밭의 모습을 잘 포착하고 있다.

이 꽃은 도시에서 떨어진 습지에 자생하므로 부귀하고 현달한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고 자연의 한가로운 정취를 즐기는 문사나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야인과 어울려야 제격이다.


인간 세상의 온갖 일이 마음과 어긋나서
한강에 낚싯줄을 드리우는 계책도 글러 먹었네.
하룻밤 꿈속에서 넋이 이 일을 이루었으니
갈대꽃 속의 안개비에 도롱이가 흠뻑 젖었구나.

人間百事與心違(인간백사여심위)
江漢垂綸計亦非(강한수륜계역비)
一夜夢魂能辦此(일야몽혼능판차)
蘆花煙雨滿蓑衣(노화연우만사의)

이 시는 빼어난 시적 재능을 지니고 한평생 포의(布衣)로 살았던 석주(石洲) 권필(1569~1612)의 ‘꿈을 기록하다(記夢)’라는 작품으로, 한강 언저리에 은거하여 낚시질하며 한가롭게 살고 싶은 소망마저 실현할 수 없는 처지의 시인이 꿈속에서 그 바람을 성취한 희열을 담고 있다. 각박한 형편에 실현하기 어렵기만 한 자연 은거의 소망이 하룻밤의 꿈속에서 이루어졌음을 기꺼워하고 있다. 꿈속에 만발한 갈대꽃 속에서 낚시하던 시인은 내리는 부연 안개비 때문에 도롱이가 흠뻑 젖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시를 통하여 자연 속에 은거하여 평화로이 살고 싶은 바람은 현대인만의 염원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성범중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명예교수·<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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