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늘어난 티셔츠, 때 탄 인형, 누레진 베개. 헤졌지만 누군가 버리려고 하면 마음 쓰이는 것들. 우리는 이 앞에 ‘애착’을 붙여 애착 인형, 애착 베개라고 부른다. 쏟아지는 공산품에 나의 기억, 냄새, 취향을 입혀 완성한 것이 바로 애착 물건이다. ‘몹시 사랑하거나 끌리어서 떨어지지 아니함’을 뜻하는 애착은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 생각, 공간에 담긴다.
얼마 전, 우연히 뜬 저출산 관련 기사에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보다 이미 이 땅에 태어난 사람부터 챙겨주세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어딘가 비뚤어진 한 줄을 보니 책에서 읽은 고독사가 떠올랐다. 이름부터 쓸쓸한 고독사는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맞이하는 죽음을 말한다. 1인 가구의 증가로 고독사 비율은 꾸준히 늘고 있고, 최근 취업난으로 청년 고독사 역시 증가하고 있다. 이들의 죽음은 겨울의 고요에 묻히고 봄이 와야 비로소 창문을 통해 새어나가는 악취, 벌레 등으로 이웃에게 발견된다. 한 건물에 살아도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만 꾸벅 나눌 뿐, 안부를 묻기조차 조심스러운 세상이다. 개인정보 보호가 중요한 시대에 부담 없는 대화 주제를 고르다 결국 층수만 올려다본다.
조심스러운 건 학교도 마찬가지. 학기 초, 보호자는 담임 교사에게 ‘학생 기초 조사서’를 제출한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이곳에는 보호자 이름과 학생과의 관계, 주소, 연락처, 아동의 흥미 사항이 담겨있다. 종이 한 장을 보고 몇 번이나 마스크를 재활용해 하얀 보풀이 일거나 사계절 같은 옷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의 속사정을 알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담임이라도 교육비 복지 혜택을 받는 학생이 누군지 알 수 없다. 그마저도 교육비 혜택 신청을 한 학생들만 복지 담당 업무 교사에 의해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학교에서 개인 정보 보호를 강화하며 낙인효과를 방지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성과를 냈다. 한편으론, 모든 학생이 똑같은 베일을 덮어쓴 것만 같다. 교사마저 졸업앨범에서 사진을 내리고,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는 현실에서 보호 제도를 탓하는 게 아니다. 다만, 서로 가리고 거리 두는 세상에서 우리는 정작 무엇을 지키고 있는 걸까?
사랑하는 것과 떨어지지 않으려는 감정인 애착은 지구에 온전히 정착하기 힘든 지구인들에게 중력만큼이나 중요한 힘이다. 이제 추운 겨울이 온다. 당신의 밤이 유난히 길다면 마음의 질량을 높여 이 세상으로 한없이 끌어당겨지자. 그저 그런 날,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갑자기 마음에 들어와 하루를, 일주일을, 일 년을 바꾸는 순간이 올 테니. 마지막으로 책 <남겨진 것들의 기록>에 나온 애착 문장을 공유한다.
“텅 빈 심연 속으로 가라앉기 전에 단 하나라도 애착 있는 무언가를 챙기고 붙들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버려도 사람이든 물건이든 생각이든 무엇 하나에라도 애정을 갖고 있다면, 그것이 나의 구원이 되어주기도 하니까”. 소복이 쌓이는 눈덩이처럼, 작은 애정을 모아 나만의 가림막이 아닌 우리의 보호막을 만들기를.
배상아 연암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