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매우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울산과학대학교가 국제개발협력센터를 유치했다는 뉴스였다. 대한민국이 오늘날 전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1960년대 초부터 시작된 국제사회의 공적개발지원(ODA)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 수도인 울산이 받은 혜택은 남들보다 크다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초 ODA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데 이어, 2009년 ODA 선진국 협의체인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회원국으로 진입하는 기적을 일구었다. 이렇듯 국제개발 역사상 기네스북 기록을 수립한 우리는 매년 6조원이 넘는 개발 원조 재원을 투입할 수 있게 되었고, 개발도상국들의 경제, 사회, 문화 발전과 보건복지 증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조하고 있다. 가슴 뿌듯한 일이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2021년부터 ‘지방으로 국제개발 협력 저변을 확대’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국내 주요 지역에 국제개발협력센터를 개설해 해외 파트너 발굴과 세계시민 교육 등을 통해 지역 사회 내 국제 개발 협력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핵심 산업별 글로벌 기업들이 대다수 소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울산은 인천, 강원, 대구, 전북, 제주, 충북, 광주, 경남, 대전 등 10개 광역지자체 중에서 ‘기업 참여형 ODA’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이다.
울산과학대학교는 그간 지역 내 대학, 공공기관, 민간 기업 간 공조를 주도해 국제개발협력 핵심 거점기관으로서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해 왔고, 그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굴뚝산업과 오염된 태화강 이미지를 극복하고 모범적인 생태도시로 재탄생시킨 친환경 산업단지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울산형 ODA 모델’을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국내외적으로 잘 홍보한다면 가까운 시일 내 울산이 ODA 선도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또한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유엔환경계획(UNEP),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 등 기존 국제기구들과의 파트너십을 확대 강화해 울산에서 수학하는 대학생들에게 ‘U-FLY’와 같은 해외 국제기구 인턴십 프로그램 참여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ODA 유관기관에서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면 지방 인재의 유출을 막고 정주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동 센터가 울산에 계속 소재할 수 있도록 울산시가 적극적으로 유치 노력을 해 준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ODA는 단지 ‘퍼주는’ 자선사업이 아니다. 울산 ODA 사업 기관들이 최대 6조원에 달하는 프로젝트 입찰에 성공할 경우, 울산기업들이 그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시작이 반이라 했는데 그것도 잘된 시작이니 기대는 더욱 크다.
지난 8월 중순 케냐와 에티오피아를 다녀왔다. 케냐에는 UNEP 본부가 있고,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55개 회원국의 아프리카연합(AU) 소재지여서 35년 외교관 생활 중에 한번 꼭 가보고 싶었던 버킷리스트였는데 그 꿈이 공무원 정년퇴임 직후에 이루어져서 감개무량했다.
국민대학교가 주관한 ‘기후변화대응 및 ODA 사업단’ 일원으로 UNEP, 유엔인간정주계획(UN-Habitat), 월드비전 케냐사무소, 나이로비대학교 왕가리 마타이 연구소,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 아디스아바바 대학교 환경과학센터, AU 본부, 현지 대사관 및 KOICA 방문 등 분망한 공식 일정을 소화했다.
엄청난 면담 스케줄과 극심한 매연, 교통 체증 등 출장 환경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두 나라 모두 고지대라 말라리아 걱정을 하지 않았고 치안도 비교적 양호한 편이었다. 더욱이 주말이 끼어있어 케냐에서는 마사이 마라 국립공원과 덴마크 여성 소설가 카렌 블릭센의 자서전을 영화로 만든 ‘아웃 오브 아프리카’ 촬영지를, 에티오피아에서는 아라비카 원산지 커피를 생산하는 ‘Hedero’ 공장을 견학할 수 있었다.

마사이 마라 국립공원은 탄자니아 세렝게티와 함께 아프리카 대륙에서 손꼽히는 사파리투어 명소인데 7~8월 여름방학 시즌이라면 가격 면에서나 야생동물 체험 가능성 등에서 케냐가 유리하다. 나이로비에서 차량으로 대략 6시간 정도 걸려 국립공원내 숙소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맛보기 사파리투어를 했고, 다음날은 하루 종일 동물들을 찾아 헤맸다. 최대 8명까지 탑승할 수 있는 사파리 차량 수십 대가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를 지그재그로 이동하다가 ‘Big Five’가 보이거나 포식동물 사냥 광경이 목격되면 어군탐지 정보공유 어선들처럼 서로서로 무전으로 연락했고 금세 근처에 있던 차량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빅 파이브인 코끼리, 코뿔소, 버펄로, 사자, 표범 중 일부라도 보게 되면 대성공이라고 했는데 운 좋게도 악어, 하마, 치타, 하이에나 그리고 기린 가족들까지 보았으니, 본전은 뽑은 셈이다.
아라비카로 말하자면, 원산지인 에티오피아에서 10세기경부터 생산되었다는 정도는 알고있었지만 예가체프, 게이샤와 하라르가 에티오피아 내 아라비카 생산지명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아라비카는 로부스타에 비해 고산지역 열대우림기후에서만 생산되며 꽃이 지고 9개월 후에야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커피 중 자연산(forest coffee)은 10%에 불과한데 그중 45%가 에티오피아산이라고 하며 손으로 직접 따서 수확한다고 하니 고급커피가 아닐 수 없다. 커피나무는 15개월 동안 묘목으로 키워 모심기하듯 조심스럽게 옮겨 심어야 하고, 최소 5년이 지난 후에야 열매가 열리고 이후 최장 20년간 생산한다고 한다. 향후 울산국제개발협력센터를 통해 대아프리카 ODA 사업이 성사되어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아프리카의 진면목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박철민 울산대 교수 전 울산시 국제관계대사